묵상자료 8731호(2025. 4. 12. 토요일).
시편 115:13-15.
찬송 31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출신 노벨 문학상 작가인 T. 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이 1922년 발표한 < 황무지 >란 시의 첫 구절은 이렇게 전개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황무지>의 제1부 첫 구절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박은몽 칼럼, 기술과 혁신,
2. “이스라엘과 유다는 회복되리라(27-34절)”을 읽었습니다. 4월 들어서면서 엊그제 까지 여러 날 머리가 흐릿하고 어지러우며 힘든 시간을 가졌습니다. 설교하는 강대상에서 쓰러질 것 같은 기분도 들어서 교우들에게 눈치 채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쏟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 머리도 맑아지고 기운도 솟아났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팔십대에 치러야 할 간헐열/間歇熱이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어 보기로 생각했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새로운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다 맑은 정신으로 야훼 하나님의 약속을 묵상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앞으로 이런 날이 오리라.” 약속의 첫 마디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런 조건도 없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희망이 솟아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철부지와의 약속은 언제나 실망 밖에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경험치를 조건으로 달수는 없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거하는 사람이나 짐승 모두가, 씨를 뿌려 농사짓듯이 불어나게 하리라고 말입니다. 이전에는 이 백성을 뽑고 부수고 허물고 멸하고 해치기만 했으나, 이제는 눈을 똑바로 뜨고 세우며 심어주시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새 약속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오면, “아비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큼해진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죽을 사람은 죄지은 사람으로, 이가 신 사람은 신 포도를 먹은 아비이지 아들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른바 연좌죄/緣坐罪를 묻지 않겠다 하십니다. 새 계약이란 돌비가 아니라 마음 비에 새길 것으로, 다시는 그들의 잘못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용서해 주리니, 다시는 이웃과 동기끼리 서로 깨우쳐 주며 야훼의 심정을 알아드리자고 하지도 않고, 높은 자나 낮은 자 모두 내 마음을 모르는 자가 없으리라는 내용입니다. 세상에 이런 날이 오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앞으로 그날이 오면 말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 그것을 은총/카리스(χαρις) 라고 부릅니다. 넘치고 넘쳐흐르니 누가 무엇으로 거부하고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은총의 사랑을 하나님께서는 하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기다려 주고 참아 주는 사랑, 그것을 긍휼/엘레오스(ελεος) 라고 부릅니다. 끝까지 참고 기다려 주시니 누구도 아무도 누리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랑을 하셨던 분입니다. 처음부터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이 뽑아 세운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이란 긴 세월 노예생활을 하는 동안, 느낀 것도 많고 생각도 많아지고 새로운 각오도 생겨서, 철이 좀 들었거니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율법을 주시고, 그걸 성실히 지키면 은총과 긍휼의 사랑을 유지하겠다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한 마디로 말하면 꽝이었습니다. 철들기는 애당초 기대난망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제가 제 자신을 보고 내린 결론입니다. 목사라는 신분에 걸맞지 않게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 이 소리에도 귀를 쫑긋 저 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웠던 것입니다. 본래 약속이란 굳은 심지를 갖고, 앞뒤를 잘 살필 수 있는 자들끼리 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 되더라는 말입니다. 신소리 하나를 해야 하겠습니다. 유튜브에서 본 것인데, 한 목소리 톤이 거친 여성분이 독백처럼 얘기합니다. “나와 남편은 로또와 같아. 안 맞아. 정말 안 맞아. 하나도 안 맞아.” 제가 처음 로또를 산 것은 1969년 11월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당첨금이 정액제로 500만원이었습니다. 그것이면 4년 동안의 대학 등록금을 내고도 남을 금액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또를 샀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돈이 부족한 때라서 한 주간에 딱 한번만 샀습니다. 모두 허탕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뒤늦게 깨닫고 손을 씻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돈)을 의지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돌비가 아닌 마음 비에 새겨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가능한 얘기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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