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29호(2025. 4. 10. 목요일).
시편 115:7-9.
찬송 23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종종 어떤 것을 간절히 바라고 또 그것을 충족할 수 있다면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하느라,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잊고 산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모루아(André Maurois, 1885년~1967년)은 이런 말을 남겼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인생을 바라보면, 가지지 못해 아쉬워했던 것들이 사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왜 그땐 그걸 알지 못했을까?
2. “참 예언자 예레미야(1-16절)”을 읽었습니다. 제겐 6살 된 강아지가 있는데,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몇 가지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싫으면 싫다고 분명히 밝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것이 고맙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의 성정/性情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불통인 우리들에게서 그런 면을 보시고 웃으시기도 하시지 않을까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드는 새벽입니다. 강아지를 통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들로 보이는 요즘입니다. 모나고 비뚤어졌다 생각되는 것들이 상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생각하니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의 급하고 참지 못하며 큰소리치는 그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참 흥미롭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성전에서 그리고 백성들의 마을에 가서, 당신의 말씀을 듣고 못된 생활을 고치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면 재앙을 퍼부어 주시려던 계획을 거두어들이시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예언자 예레미야는 지체하지 아니하고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사람들 눈에는 몹시도 거슬렸을 것입니다. 그 점이 예레미야가 다른 선지자들과 달랐던 모습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모습을 사람들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또 다시 꼰대 같은 말씀을 되풀이 하십니다. “너는 야훼의 말이라고 일러 주어라. 내 말을 따라 살아라. 내가 세워 준 법대로 살아라. 내가 거듭거듭 보내는 나의 종 예언자들의 말을 들어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 집을 실로같이 만들리니. 이 성읍은 세상 모든 민족에게 욕을 먹게 되리라.” 참 알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게 듣기 싫은 소리만을 듣게 하는지 말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우리가 부모님 나이쯤 먹게 되었을 때, 뒤늦은 후회를 합니다. 왜 그때 어머니의 말씀을 듣지 않았을까? 왜 그때 선생님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깨닫지 못했을까? 그래서 예언자의 삶이, 그리고 부모님의 삶이 그리고 선생님의 삶이 외롭고 고달프고 힘든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레미야가 이런 야훼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자, 일반 민중은 물론 사제들과 다른 예언자들은 목소리를 합해서 예레미야에게 말합니다. “이 죽일 놈아, 어찌하여 야훼의 이름을 빌어 이 성전이 실로처럼 되고 이 성읍이 허물어져 사람이 못살게 된다고 하느냐?”이 소식을 들은 왕궁의 고관대작들은 성전으로 몰려와 사제들과 예언자들의 고발을 듣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굽히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야훼께 사명을 받고 온 몸이오. 나는 그 분의 분부대로 이 성전과 성읍이 어찌될 것인지를 전하였을 뿐이오. 그러니 여러분의 하나님 야훼의 말씀대로 생활태도를 고치시오. 그렇게만 하면 야훼께서는 여러분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실 것이오. 나는 여러분의 손에 있소. 여러분이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시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이 있소.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면, 죄 없는 사람을 죽인 책임을 져야 하오. 이 성과 이 성의 시민이 책임을 져야 하오. 나는 야훼께 사명을 받고 온 몸으로서 여러분에게 전하여 주었을 뿐이오.” 오늘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을 찾기가 힘이 듭니다. 오직 저희가 듣고 싶은 그런 말을 듣고 싶어서 교회에 옵니다. 제가 목회할 때 시무 장로 한분이 늘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제목은 <말하는 대로>였는데, 그 마지막 소절입니다.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될 수 있다고 그대 믿는다면, 마음먹은 대로 (내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그대 생각한 대로) 도전은 무한히 인생은 영원히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이루고 싶어서 교회를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많고 많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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