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27호(2025. 4. 8. 화요일).
시편 115:1-3.
찬송 36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탁할 줄 알라. 이처럼 쉬운 일도 없고, 이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 사람은 때때로 부탁하며 살줄도 알아야 한다. 부탁하는 것은 주위에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끈끈한 정이 흐리고 있다는 증거이다.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부탁에 익숙해 있다. 부탁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일도 해내기 어렵다.” 윤문원, 지혜와 평정, p.36.
2. “70년을 종살이 하리라(1-14절)”을 읽었습니다. 지난 주일엔 제가 협동목사로 있는 주성청각장애인 교회에는 한 노신사가 출석하였습니다. 사실은 몇 달 전부터 매 주일 예배를 드리러 오셨다는데, 제가 출석하는 첫 주일에는 그분의 사정으로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연세는 85세 중견기업의 회장으로 은퇴하셨다고 합니다. 소개하신 목사님 말씀은 고급 공무원 아들을 비롯해서 자녀들을 잘 키우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로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영적 갈증을 느끼고 계셨다 했습니다. 지난주일 저의 설교는 빌 3:8-14을 본문으로, “목표가 분명한 인생”이란 제목이었습니다. 그분은 이전에 여러 차례 다른 교회에도 출석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실망을 하신 듯 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제게 찾아오셔서 감명 깊게 설교를 들으셨다며,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KCI(한국학술지 인용 색인)에서 소개하는 한 논문(김태식 교수, 경북대학교, “트럼프의 정치적 등장 이후 급속하게 재등장한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일고찰”)을 읽었습니다. 집필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지만, 그분은 초록에서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자주 말하는 복음주의라는 말이, 근본주의적 복음주의라고 정의하는데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제 주변의 소위 신학자라는 분들이나 목사라는 분들은 대부분 복음주의를 제대로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는데 말입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고 있었으며, 성경의 상황(context)을 고려하지 않고, 오늘의 상황(contemporary context)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말입니다. 앞으로는 근본주의적 복음주의라고 보다 구체적인 전제를 달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된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적 복음주의와는 엄청 다르다고 말입니다.
때는 유다 왕 여호야킴 제4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제1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말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온 백성에게 전할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시민들 앞에서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유다 왕 요시야가 왕위에 오른 지 13년 되던 해로부터 이날(여호야킴 4년)까지 무려 23년간을 하루같이 야훼의 말씀을 전했지만, 그 백성들은 듣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귓전으로도 들으려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그 내용은 그릇된 길을 버리고 악한 짓을 더 이상 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입니다. 그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손으로 만든 우상에게 예배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분통이 터진 야훼께서는 이방인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죽이고, 이 땅을 쑥밭으로 만들어 버릴 뿐 아니라, 무려 70년 동안이나 바벨론 왕의 노예로 살게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 나라에서 기뻐 흥겹게 노래하는 소리도, 즐거운 신랑신부의 소리도, 맷돌질 하는 소리도, 그리고 등불이 켜지는 일도 있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70년의 기간이 차면 이번에는 바벨론 백성과 왕에게 벌을 내릴 터인데, 이번에는 바벨론이 남의 종이 되고 그 나라가 쑥밭이 되리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야훼의 백성을 고통스럽게 한 것이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서 한 일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어리석은 우리 인간은 돌이킬 골든타임을 놓치는 악순환을 되풀이 할 뿐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주세페 베르디가 작곡한 나부코(이탈리아어: Nabucco) 4막의 오페라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기억할 것입니다. “내 마음아, 황금의 날개를 타고 언덕 위에 날아가 앉아라. 훈훈하고 다정한 바람과 향기로운 나의 옛 고향. 요단강의 푸르른 언덕과 시온 성이 우리를 반겨주네. 오, 빼앗긴 위대한 내 조국, 오- 가슴 속에 사무치네. 운명의 천사가 연주하는 하프소리, 지금은 어찌 잠잠한가. 새로워라 그 옛날의 추억, 지나간 옛일을 말해주오. 흘러간 운명을 되새기며 고통과 슬픔을 물리칠 때,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굳건한 용기를 주시리라.” 참회록과 같은 장엄한 노래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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