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30호(2025. 4. 11. 금요일).
시편 115:10-12.
찬송 33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 꽃밭 속에 꽃들이 한 송이도 없네. 오늘이 그날일까 그날 언제일까. <후렴> 해가 지는 날 별이 지는 날. 지고 다시 오르지 않는 그날이/ 2. 싸움터엔 죄인이 한 사람도 없네. 오늘이 그날일까 그날 언제일까/ 3. 마음속에 그님이 돌아오질 않네. 오늘이 그날일까 그날 언제일까?” 김민기가 1969년에 썼다는 <그날>입니다. “해가 지고 다시 오르지 않는 그날”을 희망하고 있으니, 얼마나 암울한 날이었을까? 1969년 11월 저는 35개월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하였습니다.
2. “포로 민에게 보낸 편지(1-14절)”을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리고 교회는 요행이라는 것을 퍽 좋아합니다. 정상적으로는 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요행심리가 강한 사회는 매우 위험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령 오늘 국민일보의 한 칼럼에는 아주 흥미로운 글이 올라와있었습니다. “교회 연애하러 오세요. 밥 먹으러 오세요. 외로우면 그냥 오세요.” 짧은 설교 영상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중략> 설교는 말합니다. 신앙은 완벽한 동기에서 시작되지 않아도 된다고요. 외로움, 연애, 밥, 사업 성공이라는 이유로 교회에 왔다고 해도 그 머무름 안에서 결국 하나님의 뜻은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긍정적인 댓글들이 올라왔다는 후기도 달렸습니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제가 교회에 어린 시절에 다니던 교회에서는 엄감생심이랄 수 있는 말입니다. 1960년대 초 통일교 대학생들이 제가 사는 시골 동네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흉흉한 소문이 번졌습니다. 그들의 집회에서 불이 꺼졌고, 그때 청년 남자와 여자들이 서로 짝을 하나씩 잡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훗날 결혼 상대가 되었다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가능성이 있는 얘기라고 했습니다. 그 공동체는 그렇게 젊은이들의 가슴을 훔쳐갔던 것입니다. 그 때는 교회가 연애당이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비난이 많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젊은이들이 만나기 어려운 시절이었으니까 그것도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교회는 청년회장이 막걸리를 마셨다고 해서 6개월 수찬금지 벌이 내려졌고, 담배를 피웠다고 해서 3개월 교회 출석도 금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공자님의 바른 생활이 거의 매 주일 반복되었습니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는 시대 풍조와는 달랐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싹수가 노란데서 어떻게 건강한 새싹이 나올 수 있느냐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100만분의 하나를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은 대학교 부총장도 의과대학 학장도 대학교 교수도 그리고 저 같은 목사도 나왔습니다. 그 가난하고 척박한 땅에서 말입니다. 교회 누나를 만나려고 교회에 나오라니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노란 싹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들어 버리려는 수작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답답해도 요행을 꿈꾸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장로들과 사제들 그리고 예언자들과 온 백성에게 편지를 썼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갈 것을 예언했던 당사자가 말입니다. 왕과 왕의 모친 내시들과 고관대작들이 바벨론으로 다 끌려간 다음에 쓴 편지라고 했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끌려간 바벨론에서 집을 짓고 살라며, 과수원을 짓고 그 과일을 따 먹으라고 합니다. 장가도 들어 아들 딸 낳고 며느리와 사위도 얻어 손자 손녀를 낳으라고 합니다. 인구가 줄면 안 되니까 부지런히 자식농사도 지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가 잘 되도록 내게 빌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그 나라가 잘 되어야 너희도 잘 되기 때문이라고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예언자와 박수무당들에게 속지 말라고도 하십니다. 내 이름을 팔아 거짓 예언을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바벨론에서 70년을 다 채운 다음에 약속대로 그곳에서 다시 데려오시겠다 재차 약속하십니다. 내 뜻은 너희를 나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잘해 주려는 뜻이며, 내게 와서 성심껏 기도하라고도 하십니다. 일편단심으로 나를 찾으면 만나주시겠다고 하시며, 너희가 포로로 끌려갔지만, 너희를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또 다짐하십니다. 편지는 내일까지 계속될 예정입니다만, 예레미야에게 감정이 좋지 않은 그들로써는 반가울 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심어주고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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