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10(2025. 3. 22. 토요일).

시편 109:26-28.

찬송 50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권정생 선생은 시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버스비가 모자라 완행기차를 탔던 얘기를 썼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한사코 자리를 양보해서 앉게 되었는데, 무심코 교회에 다니시느냐고 물었답니다. 아주머니는 반색을 하며 그렇다 대답하시고는, 10여년 쯤 이상한 체험을 했다 들려주더랍니다. 바쁘게 집안일을 하는데, 한 거지가 찾아와 구걸을 해서, 지금은 바쁘니 다음에 오라고 했더랍니다. 그런데 박대를 받은 거지 뒷모습을 보니까 틀림없이 예수님이더랍니다. 그래서 허겁지겁 쌀 한 대접을 퍼서 뒤따라갔으나 찾을 수 없었답니다. 그제야 잘못을 깨우치고 대성통곡을 했다 합니다. 그 뒤론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면 예수님 대하듯 하며 살고 있다 한다 했습니다. 권정생, 우리들의 하나님, pp.116-117.

 

2. “마땅히 멸망하리라 2(20-31)”을 읽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죄인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시는 미련하고 속없는 청맹과니들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어서, 바보 같아서 죄를 죄인 줄 알지 못하고 짓는 죄인들입니다. 그런가하면 상식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가릴 줄 아는 보통의 죄인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들 얘기하는 대로 힘든 세상에서 살아보려고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 짓는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법의 내용이나 속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법망을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닐 줄 아는 소위 법꾸라지들 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법의 내용으로 보아서 분명히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절차상 하자가 있다거나 형식적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불법한 내용까지 엎어버리는 경우가 있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변호사를 사야하는 경우가 필수요건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름 청맹/靑盲과니가 그런 사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눈인데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볼 수가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예레미야의 입에서는 청맹과니만이 아니라 멀쩡한 귀머거리라는 말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육체적으로는 불구가 아닌데 불구처럼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넘치도록 많은 특혜와 특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셔서, 철따라 소나기 가을비 봄비를 내려주시고, 추수 때를 어김없이 지켜주시며, 깊이 잠들어 있거나 높은 파도와 싸울 때에도 동행하여 주시는 든든한 인생의 보장이 되어주신다 철석같이 약속해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걷어 차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기고, 거짓과 불의를 일삼으니 말입니다. 이런 현상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 인간은 아주 오래 전 선조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불순종하는 잘못을 저질러 온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뱀에게 유혹을 받을 때, 의심과 불신의 마음을 심어준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오히려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맑고 밝게 세상을 볼 수 있다고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실체를 흔드는 의심의 씨앗을 심어준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위치에 있으면서도, 마치 하나님과 대등한 자리에 있는 양 생각하도록 허세를 부리게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 선의/善意로 살아가려고 하지 않고, 올가미를 놓아 사람을 넘어지게 하고, 거짓으로 다른 사람을 약탈해서 벼락부자가 되려고 하며, 고아나 빈민의 인권을 짓밟고 공정한 재판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인간은 자신들의 삶 전체를 불행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언자들은 거짓말을 퍼트리고, 사제들은 제 멋대로 가르치며, 백성들은 그런 짓거리를 도리어 환영하는 시대를 만들고 있다고 말입니다. 초록이 동색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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