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13호(2025. 3. 25. 화요일).
시편 110:4-7.
찬송 5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나이 하나하고 스물이었을 때, 어느 어진이가 하는 말을 나는 들었다. ‘돈이야 금화이건 은화이건 주어 버릴지라도 네 마음만은 결코 주어서는 안 되고, 보석이야 진주건 루비건 주어 버릴지라도 네 생각만은 자유분방해야 하느니라’ 그러나 내 나이 하나하고 스물이었으니 나에겐 소용없는 말이 되었지” A. E. 하우스만,
이봉국 편, 영원한 세계의 명시, p.125.
2. “거짓 예배2(21-34절)”을 읽었습니다. 개역 개정판의 번역과 공동번역의 번역이 그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오늘 본문 첫 구절을 대조해서 비교해 보겠습니다. 먼저는 개역 개정판 다음은 공동번역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물과 번제물의 고기를 아울러 먹으라.” “나 만군의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선언한다. 친교제에다 번제를 보태어 바치고, 그 고기를 처먹어라.” 우선 어투가 부드러운 개역개정에 비해 공동번역은 거칠고 무섭습니다. 그런데 거짓 예배라는 표제어에 딱 어울리는 것은 공동번역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메튜헨리의 주석을 옮겨보겠습니다. “그들이 성전을 악행으로 더럽히는 한, <중략> 그들이 계속해서 불순종하는 한, 그들이 드리는 제물들은 그들의 죄를 속해주지 못할 것이고, 열납되지도 못할 것임을 그들에게 보여주신다. <중략> 너희가 좋다면 계속해서 제사를 드리고 이런 제사를 드린 후에는 저런 제사를 또 드려라. 너희가 드려야 할 번제물(이것은 온전히 불살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했다)을 화목제물(제사를 드리는 자가 제물 중에서 상당한 몫을 차지할 수 있었다)로 돌려서 고기를 먹으라. 왜냐하면 한두 끼를 푸짐하게 고기를 먹는 것이 너희가 희생제사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유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가 이렇게 방종하게 살아가는 동안에는 희생제사를 통해서 그 밖의 다른 유익을 얻기를 기대하지 말라.” 이런 주석이라고 하면, 어느 번역이 의미가 통하고, 분위기에 맞는다 할까요? 단연 공동번역입니다. 희생제사는 불에 온전히 살라야 하기 때문에 먹을 것이 전혀 없었지만, 당시의 제사는 제사장들이 먹기 위해서 적당히 불살랐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제사에는 마음이 없고 젯밥에만 마음이 있었던 현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거짓 예배가 들통이 났고, 엉터리 제사장들이 판을 치고 있었음을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메튜헨리는 오늘의 본문을 해석하면서, 하나님께서 바라신 것은 순종이었고, 그들과 다투신 것은 불순종 때문이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설교 준비도 어렵고 성경 이해도 힘들어서 부산의 감림산 기도원이라는 곳에 가서 한 사흘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들이 묵는 숙소가 맨 위에 자리 잡았는데, 유명 강사가 집회를 인도한다고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면서 고성능 확성기로 빨리 내려오라고 독촉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려갔는데, 제가 맨 나중에 예배당에 들어온 것인지 강대 바로 밑을 제외하고는 자리가 다 들어차 있었습니다. 강사는 한얼산의 욕쟁이 이아무개목사님이라고 했습니다. 2시간을 설교하는데, 과거에 깡패 짓하던 시절의 얘기로 도배를 했습니다. 온갖 신소리를 다 동원했는데, 할 것이 없었는지 자신을 초청한 기도원 원장인 이 아무개 수사를 험담하는 것입니다. 곱살하게 생겨서 몇 놈은 정신 못 차리게 했을 거라는 등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도원 재건축을 위한 헌금 모금을 위한 순서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눈감게 하였고 헌금 액수를 말하고 손을 들라고 하는 것입니다. 10만원에서 출발해서 30만원 50만원 70만원 100만원 단위로 올라갔을 때입니다. 몇이나 손을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강사의 다음 말이 압권이었습니다. 손을 내리기 전에 빨리 가서 마음이 변하기 전에 이름과 주소를 적어 오라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지루했는지 모릅니다. 그때 망측스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중세 교회가 면죄부를 팔아 아름답고 커다란 성당과 교회들을 그렇게 지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성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활태도가 잘못되었는데, 예배라고 제대로 드릴 수 있을까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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