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01호(2025. 3. 13. 목요일).
시편 108:11-13.
찬송 47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한두 가지 결점은 갖고 있게 마련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자제하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가볍게 처신해 놓고 뒤늦게 후회한 적이 다들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음에는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후회하고 반성할 일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은 아마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만나기 힘들 것이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지지를 받을 수도 없고, 늘 가치 있는 존재일 수도 없다. 게다가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람을 사랑하라.”
켄트 케이스, 그리도/Anyway, pp. 28, 31.
2. “모세가 죄지은 백성을 위하여 빌다(23-29절)”과 “다시 만든 계약 판을 계약 궤에 모시다(1-5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계약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관계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과 맺으신 것으로, 그런데 이 계약은 구두로 맺은 것으로, 3대에 걸쳐서 확인하고 또 확인했던 것이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으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영원히 바꿀 수 없는 계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약 관계를 출애굽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구체적인 율법으로 확정하셨고, 그것을 문서화하는 것이 바로 돌비에 새긴 십계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계약이 먼저였고, 기록은 아주 훗날에야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으로 화가 난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십계명 두 돌 판을 금송아지 상을 깨트리는데 사용한 것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요약된 율법인 십계명을 다시 돌 판에 새기게 된 것입니다. 십계명을 새긴 돌 판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고 해서, 계약 관계가 그 정신에 있어서 훼손되거나 사라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돌에 새긴 십계명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계약관계의 중요성과 가치는 그것이 종이나 돌 판에 새겨졌다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기억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훗날 사도 바울은 이런 의미를 가득 담은 말씀을 하였고(고후 3:3), 히브리서 기자도 같은 뜻으로 이른바 돌비와 심비/心碑를 대조시켰던 것입니다. 율법의 뿌리와 정신을 항상 기억할 이유입니다.
계약을 파기하는 것과 계약서를 찢어버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임을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약속은 그것을 파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와 그것을 그의 아들 이삭과 그리고 그의 손자 야곱에게 다시 확인해서 세운 약속이었다는 것은 그들 사이에 마음에 품었던 신뢰와 우정 그리고 온갖 사랑과 감사를 하나하나 기막힌 일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두 가지만 살펴본다면, 그 하나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풍족하게 잘 살고 있었던 갈대아 우르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전혀 상상조차 해 본 일이 없는 가나안으로 떠나라고 하실 때,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순종이라는 말은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 그리고 자존심까지도 다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가나안을 향했을 때, 아브라함 부부, 부친인 데라, 그리고 조카 롯이 전부였습니다(창 11:27). 다른 하나는 75세에 가나안에 정착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고 강가의 모래알 같이 많은 후손을 약속했는데, 그래서 25년이나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린 것입니다. 아랍세계의 관습에 따라 아들을 낳지 못하자 가나안에 정착한지 10년째인 86세에 첩인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지만(창 16:3), 하나님은 적자인 이삭을 낳을 때까지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25년을 기다려 얻은 아들 이삭을 뜬금없이 예루살렘의 가장 높은 언덕 모리아에 가서 제물로 바치라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한 번도 물어보지도 않을 채 사흘 길을 걸어서 그곳에 도착해서 제물로 드리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놓으신 수 염소로 대신 하게 하신 사건입니다(창 22:1-19). 어느 학자는 이를 두고 아브라함은 자식을 죽일 뻔 하였을 뿐이나, 하나님은 자식을 진짜로 죽이시기까지 했다 해석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맺은 약속을 어떻게 계약서 한 장을 찢거나 불태웠다고 파기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금 새로 다듬은 두 개의 돌판에 계약서를 새겨 주신 것은 당연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다시 두 개의 돌판을 다듬어 호렙산으로 갔고, 하나님께서 새겨주신 율법판을 준비해 두었던 법궤에 모셨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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