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15호(2025. 3. 27. 목요일).
시편 111:4-8.
찬송 3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항상 흘러가고 있으며 매달리고 집착할수록 지옥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다. 당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시간이 지금 당도하고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그의 말 중에 우리의 가슴을 찌르는 또 다른 한 마디는 “인생이 비극인 것은 너무 일찍 늙고, 너무 늦게 철이 든다는 것이다.”
2. “야훼만이 참 신(10-16절)”, “사로 잡혀 가리라(17-18절)” 그리고 “백성의 아우성과 예레미야(19-25절)”을 읽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땅에서는 신들의 전쟁이 요란합니다. 그리스의 올림푸스 산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그리스의 신화 속에 나오는 신들의 싸움만이 아닙니다. 같은 기독교 세계에서도 “하나님”과 “하느님”이 싸우고, 그 밖에도 “석가모니”와 “알라”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리저리 넓게 생각해 보면 이 작은 지구촌을 포함해서 온 우주가 싸움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작은 해프닝을 제외하고는 종교 간에 다툼이 거의 없는 편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 모슬렘 사원을 짓는 일과 관련해서 대구에서 심각한 갈등이 있었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우리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종교의 자유를 지지합니다. 그리고 누구든 자신이 믿는 신앙을 가질 자유와 권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격려도 되고 자극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저를 비롯해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자신이 믿는 신앙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려고 애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미션스쿨이었는데, 교장선생님께서 여러 차례 기독교 신앙을 증명하려는 듯한 강연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우주계의 질서 정연한 운행/運行을 예로 들었던 것 등입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신앙은 증명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는다는 말을 사용하는 까닭입니다. 왜 믿느냐고 묻는다면, 믿고 싶으니까 믿는 것이고, 믿어야 하니까 믿는다는 말이 옳을 것입니다. 그리고 굳이 왜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는 일에 평생을 살고 있느냐 물으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신앙이 믿을 만하고 가치있으니까 라고 대답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참 하나님으로 야훼 하나님을 지지하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첫째 야훼 하나님은 창조주가 되신다고 말씀합니다(10-12절).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단한 하나님이십니까? 그래서 우리는 창조주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둘째는 야훼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13-16절).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신 것으로 임무를 다하신 것이 아니라, 직접 세상사에 개입하셔서 비와 바람을 제어하시고 천둥과 번개를 움직이시는 분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만드는 은장이처럼 숨도 못 쉬는 그런 우상을 만드는 것을 어리석다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시작과 목적 그리고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과학이 여러 가지를 밝혀내고 있기는 합니다만, 세상의 흥망성쇠의 의미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가늠할 수가 있고, 이른바 사람다운 삶 곧 윤리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바탕을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어제는 제자 한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테라스를 고치고 있는 늙은 저를 보고 안쓰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행복한 체(?) 하면서 옆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는 강아지를 끌어들였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항상 옆에 있어주는 것도 그렇고, 어디를 가나 말벗이 되어 주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가끔 먹는 것 가지고 투정을 부리긴 해도 서로 비위를 맞춰주려 애쓰니까 그런대로 잘 지내는 중이라고 말입니다. 밥과 물을 챙겨주고, 잔디밭에 나가서 일보도록 문을 여닫는 것도 서로 잘 통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저의 거실 창으로 비춰주는 목련나무엔 가지가지 마다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고, 산수유가 노랗게 꽃을 피우고, 새들이 연둣빛 새 잎들을 환영하듯 노래까지 불러줍니다. 이 모든 삶이 하나님 때문이라 생각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성경의 말씀과는 다르게 하나님을 제 마음으로 움직여 보려는 수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게 염려라면 염려입니다. 제가 믿는 성경의 하나님은 너무 위대하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십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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