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17호(2025. 3. 29. 토요일).
시편 112:1-3.
찬송 34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꿈을 가진 사람은 큰 문제와 부딪쳐 싸운다. 인격의 크기도 그렇다. 그렇다면 무엇이 위대한 꿈이며 비전일까? 그것은 그 꿈이 이루어질 때,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이라거나, 비록 나에게는 고통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희망씨, 가슴에 새기는 한 줄 명언, p.227.
2. “두 가지 상징(1-13절)”을 읽었습니다. 상징이란 문학의 한 표현 기법으로 “어떤 관념이나 사상을 구체적인 사물이나 심상(心像)을 통해 암시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가령 유대교에서는 다윗의 별과 함께 일곱 또는 아홉 개의 가지를 가진 촛대(예루살렘 메노라/menorah)를 중요한 상징으로 삼고 있는데, 진리의 빛을 의미합니다. 이는 출애굽기 25장 31절부터 40절까지에 메노라를 제작하라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예루살렘 촛대의 그림을 보는 순간, 이스라엘의 국장/國章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의 상징이 소개되고 있는 데 하나는 모시 잠방이 상징이고, 다른 하나는 술독 상징입니다. 우선 모시 잠방이 상징이란 ‘가랑이가 무릎까지 내려오게 지은 짧은 홑고의’로, 여름철에 농부들이 입는 노동복으로, 하나님께서는 예언자에게 모시 잠방이를 브랏지방의 한 바위틈에 땅을 파고 숨겨두게 합니다. 오랜 시일이 지난 후에 하나님은 다시 그 잠방이를 꺼내보게 하는데, 이미 다 썩어서 아무 쓸모가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유다의 거만함과 예루살렘의 거만함을 잠방이처럼 꺾어 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그들은 악한 생각을 굽히지 않고 제 멋대로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우상을 따르고 섬기고 있는 그들을 썩은 잠방이처럼 만드시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상징은 술독의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술독은 술을 넣어 보관하기 위함인데,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인데, 이제 하나님은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술독으로 만들어버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아비와 자식 할 것 없이 서로 부딪혀 깨어지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술독은 술의 순기능 곧 기분을 좋게 하고 즐겁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술의 역기능 곧 술에 취해서 정신을 잃어버리고 싸우고 온갖 문제를 일으키게 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각기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게 될 때, 역기능으로 혼란과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종종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거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림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곤 합니다. 이른바 행복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간과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 “공짜는 없다.”는 진리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신앙생활에서도 예외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릴없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실 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모세를 지도자로 부르신 것도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남다른 임무(?) 또는 과제를 맡기기 위해서 선택하기도 하시고, 부르시기도 하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일방적인 축복의 수혜자가 되었다는 자만심과 교만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번은 부산 남천동에 있는 베네딕투스 수녀원에 초대를 받아서 간적이 있습니다. 마침 그날은 몇 분 수녀 분들에게 종신 허원식이란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수녀 분들 역시 땅 바닥에 네팔 자를 하고 엎드려서 약속을 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수녀로써 살겠다는 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부산 교구장께서 수녀들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저를 초대한 수녀께서 설명해 주셨는데, 주님과 혼인한 사람이라는 표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날의 장면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순서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순종의 삶을 위한 다짐들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상징하는 두 가지는 비록 하나님의 백성 선민이라고 할지라도 거만하고 불순종하는 한 썩은 잠방이와 같이 아무 짝에도 쓸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기도 하고, 술독에 빠진 취해버린 삶을 살게도 될 수 있다는 의미가 매우 두렵게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선택된 사람다운 삶이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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