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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3.28 약속에 충실해야 할 두 가지 이유. / 렘 11:1-8, 14-17.

묵상자료 8716(2025. 3. 28. 금요일).

시편 111:9-10.

찬송 53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Why not the best?” 이 말은 작년 1229일에 작고한 미국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의 좌우명이다. 그는 해군 장교로 임관하고 배치 받은 함대의 함장 앞에서 해군 사관학교 820명 중 59등을 했다 대답했을 때, 머리를 방망이로 맞은 듯 큰 충격을 받았던 질문이다. 그 뒤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려고 힘쓰게 되었다 한다. Why not the best?

 

2. “계약 조문대로 벌을 내리시다(1-8, 14-17)”을 읽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일은 흥미로울 수도 있고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개성과 생각의 차이로 조화롭기 보다는 다툼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득불 최소한의 약속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제가 자란 시골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서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날만 밝으면 시끌벅적했습니다. 대체로 말썽꾸러기 아이들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입었던 옷은 광목이라는 천으로 만든 바지 저고리였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멀다 하고 흙에 뒹굴고 장난치고 싸우다 보니 매일 옷을 갈아입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들은 힘든 일이 시작이 됩니다. 그걸 개울까지 나가서 빨아서 햇볕에 말려야 하고, 저녁이면 풀해서 말린 옷을 다림질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다듬질을 해야 했는데, 오롯이 어머니와 누이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제발 험하게 놀지말라고 부탁 또 부탁을 하셨던 겁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걸로 약속을 합니다. 조심조심 옷을 입고 더럽히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머니와의 약속은 약속하는 그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또다시 엉망진창이 되어 집에 들어가고, 어머니에게 욕을 먹고 때로는 부지깽이로 맞기도 했습니다. 이런 소소한 약속은 물론 크고 작은 약속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살이인지 모릅니다. 부모님과의 약속을 시작으로 자신과의 약속, 학교 선생님들과의 약속, 그 밖에 친구들과의 약속, 나이가 차면 사랑하는 가족과의 약속 등등, 수도 셀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철이 들면서는 그 약속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엄격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재수를 하다가 군대에 입대를 하였는데, 군대에서 반 강제적으로 시키는 약속은 매우 엄격합니다. 때로는 희미한 약속이라 생각했는데, 그 벌칙은 엄중했습니다. 기갑학교 14주간의 교육을 받으면서 받을 수 있는 벌을 다 받은 것 같았습니다. 깊은 잠에 빠진 자정에 전부대원을 기상시켜 연병장을 돌게 하지를 않나, 때로는 살짝 얼어있는 연못으로 뛰어들게도 하였는데, 도난 사고가 났을 때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약속 위반에 대한 벌칙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본래 계약이란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약 당사들이 서로 지키고 누릴 내용이라는 것이며, 당연히 계약을 어길 경우 그에 따른 합당한 벌칙도 있게 마련입니다. 우선 계약 내용을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첫 번째 계약을 잘 지킬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맺은 계약에 대해서 기억할 뿐 아니라, 성실하게 지켜 행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엄중한 벌칙을 받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본문에서는 그 벌칙을 저주를 받는 것이라(3)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소홀히 여길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파기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야훼 하나님을 버리고 헛된 우상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만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우상숭배를 배신이라는 말이나 간음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배신 혹은 간음이라는 계약 파기 행위는 어떤 변명도 어떤 탄원도 가당치 않게 된 것입니다. 13절에 그 잘못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위하는 우상은 성읍의 수만큼 많고, 바알의 산당은 예루살렘의 거리만큼이나 많구나.”라고 말입니다. 뒤늦게 깨달은 그들이 울고불고 용서를 빌지만 그것은 도무지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차제에 우리는 약속과 벌칙에 대한 생각을 해 봐야 하겠습니다. 약속이란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의 환희와 축복을 향한 상호 협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벌칙이란 그 값진 축복을 망가트린 것에 대한 문책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 약속을 했을 때는 그 약속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게 중요한 일이고 올바른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서 받게 되는 벌칙은 두 배의 고통이 따를 수 밖입니다. 하나는 약속의 축복을 누릴 수 없게 된 아픔이고, 다른 하나는 받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어야 하는 아픔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을 할 때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 복된 축복의 날을 위해서이고, 헛되게 받아야 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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