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48호.
시편 104:22-24.
찬송 18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이 1788년 1월 22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가 남긴 시 <꽃처럼 저버린 사랑>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 그 아름다움 한창 피어날 때/저버린 그대/잠든 그대 위엔 묘석일랑 놓지 못하게 하리라/그대를 덮은 잔디 위엔 //…/가엾은 그대여!/혹시나 그 발걸음이 고이 잠든 그대를 /깨울까 하여이니라.”
2. “가나의 혼인잔치(1-11절)”을 읽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한번 입력된 자료는 고치기가 참 어려운 것을 느낍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이 그런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난처한 혼인잔치에 참석하신 주님의 일화입니다. 혼인잔치의 과방에서 흘러나온 얘기를 주님께서 모친을 통해 듣게 된 것입니다. “포도주가 부족하다니 이를 어쩌나?” 이스라엘과 서양에서는 피로연이나 식사 초대는 미리 참석자 명단이 확인되고 준비하는 게 상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임금의 혼례식에는 초청 확인을 했는데도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서 혼주/婚主가 화가 나서 시장과 거리에서 사람들을 갑자기 초청하고 난리법석을 떠는 얘기가 나옵니다. 1995년 겨울 학기를 미네소타 주의 쌍둥이 도시 중 하나인 세인트폴에서 예배학을 공부할 때, 저의 주임 교수님이 매 주일 저를 픽업해 주셔서 여러 교회들의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어느 날은 시내를 지나가시다가 이 주변에 큰 호텔이 있는데 그곳에서 자신의 따님 결혼 피로연을 열었는데, 100명을 초대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피로연에 초대된 손님들은 양가의 혼주가 50명씩 초대했다고 하며 평생에 기억할 즐거운 시간을 가졌노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과방을 호텔 측에서 맡고 공급하기 때문에 가나의 혼인잔치의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러나 혼주의 집에서 피로연을 가질 땐 가끔 포도주가 부족해지는 경우가 있다 했습니다. 어디나 포도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잔칫집에서 포도주가 모자라게 된다면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습니다. 이런 낭패를 대학교의 시험문제에 까지 등장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바이런이 살던 19세기에 케임브리지 대학 종교학 시험지에 등장한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의 일화는 신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고 말입니다.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은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그의 시가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람인데, 그는 일찍부터 그의 떡잎을 소개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앞서의 문제지를 받고는 2시간 동안이나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합니다. 그러니까 시험 감독인 교수가 와서 “이제 10분밖에 남지 않았네. 한 줄이라도 써야 하지 않겠나?” 했더랍니다. 그래서 그가 몇 자 시험지에 옮겼는데, 그게 바로 저 유명한 “물이 제 주인을 만나자 얼굴이 붉어졌도다.”란 정말 한 줄의 시 같은 명답이었던 것입니다. 이보다 더 멋지고 슬기로운 신앙적 의미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항상 이 구절은 바이런을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들 인생길에는 가나안 잔치집이 당면했던 문제들이 생기곤 합니다. 예수님의 문제풀이 방식을 바이런은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문제가 닥쳤을 때, 우선 두려움에 사색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곤 당황하게 되고, 원망과 불평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앙인들도 이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이런의 문제풀이방식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점을 눈뜨게 합니다. 문제 앞에서 불안해하고 원망도 불평도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바이런은 시험 시간 2시간을 다 사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 가지 대답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포도 알갱이가 밀폐된 옹기그릇에서 숙성하면 발효되어 포도주가 되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인생길의 골목골목 마다 우리의 자취를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현실입니다. 저는 이런 신앙적 의미를 시 121편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첫 공식 설교를 이 구절에서 찾아냈습니다.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로다.” 고 말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문제 앞에서 발버둥을 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해답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절망과 두려움의 한 복판에서 우리가 뚫어져라 바라볼 분은 천지를 지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신데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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