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43호(2025. 1. 14. 화요일).
시편 104:7-9.
찬송 40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960년대 한국을 찾은 중국의 석학 임어당이 우리 한국 청년들에게 남긴 말은 지금도 곱씹어볼 충고였습니다. “한국의 농촌 청년들아, 성실한 사람이 대접받는 그런 세상을 희망하며 살아가라.” 성공한 인생은 그런 사람일 테니 말입니다.
2. “갈릴레아 전도시작(14-15절)”, “첫 번째로 부르심 받은 어부 네 사람(16-20절)” 그리고 “악령 들린 사람을 고치신 예수(21-28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서 큰 유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성경이나 구절에 묶이는 경우입니다. 그 결과 성경을 전체적인 구조나 내용에서 살피는 것이 아니라, 소위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격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목사 후보는 적어도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하고 일하던 분이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는 군인 장교로 군사 훈련을 시키던 일선 대대장이 신학을 한 경우도 있고, 어느 대 기업에서 영업부장을 하던 이가 신학을 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 결과에 대한 평가는 성실성과 진정성에 의해서 좌우될 뿐 크게 장단점을 논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주님께서 첫 번째로 제자들을 부르신 일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있는 어부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시더니,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후, 어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가 그물을 버리고 따랐으며,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자 그들 역시 예수님을 따라 나서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은 체력장이나 전공 필기시험이나 인성 시험과 같은 어떤 일정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것은 부르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르심, 이를 한문자로 하면 소명/召命이라는 말입니다. 왕이 자신의 참모로 일꾼을 부를 때 행하던 방법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한 천민의 재주 있음을 알게 되자 그를 일꾼으로 불렀습니다. 저 유명한 아산 장 씨 영실이었습니다. 그는 왕의 총애를 받았고, 훗날 해시계와 물시계, 천문의기, 기후측정기를 발명하였습니다. 과거 시험으로 벼슬길에 오르기도 했지만, 장 영실처럼 왕의 부름으로 벼슬을 얻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의 참모가 되었던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주님의 참모로써 일할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일까를 오늘 본문에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열 두 명의 제자들 중에 4명이라면 3분의 1인 셈인데, 그들이 어부출신이라는 점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부출신에 대해서 고평가를 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그들이 하는 일이란 비릿내 나는 물고기를 매만지는 일을 해야 했고, 그물을 던지고 몇 마리가 잡혔는지를 셈해보고는 목표치를 이루지 못했다 싶으면 또 다시 힘겹도록 그물을 물 위로 던져야 하는 벌이가 신통치 않은 직업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난다 싶으면 자주 그물이 찢어져서 고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다시 촘촘하게 땜질을 해야 하는 지루한 일상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필이면 이런 어부출신을 예수님은 참모로 삼으려 하셨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은유적인 표현에 걸맞은 것 말고는 그리 호감이 가는 선택기준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틀어서 생각해 봤습니다. 예수님께서 택하신 기준은 어떤 공식화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원성을 사고 있는 에스 대학 법학과 출신 변호사나 검 판사라는 기준처럼 말입니다. 졸린 눈으로 그물을 깁거나, 하릴없는 사람처럼 빈 그물을 예상하면서 바다에 수차례 던지는 어부노릇을 하며 하루를 소일하듯 보내는 어부에게서 무슨 자질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제시하고 있는 제자의 직분은 그런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지루하고 힘들고 큰 벌이가 되지 않는 일일지라도, 성실하고 끈기 있게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면 누구나 주님의 참모가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로 세상을 채운다고 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살만한 세상을 구성하게 되리라고 말입니다. 주님의 참모는 자신의 일에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3. 어제는 미국 위스컨신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는 엥글러 목사님으로부터 모친께서 93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최근 아드님과 따님이 출산하는 등 기쁜 소식이 많았는데 말입니다. 삼가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의 은총이 그 가족들 위에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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