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44(2025. 1. 15. 수요일).

시편 104:10-12.

찬송 47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70년대에 나온 노래 <한 눈먼 사람이 소리쳤네>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한 눈먼 사람이 소리쳤네. 한 눈먼 사람이 소리쳤네. 어디가 길이냐. 어디가 길이냐 말해다오. 예수님 그에게 대답했네. 예수님 그에게 대답했네. 내가 곧 길이요 내가 곧 진리요 내가 곧 생명이니, 내게 오라.”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청력검사에서 이젠 시력검사를 하라 합니다.

 

2. “많은 병자를 고치신 예수(29-34)”, “전도 여행(35-39)”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40-45)”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셋째 단락입니다. 요즘 의료대란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저의 처제가 김해에서 살고 있는데, 몇 차례 혼절을 한 일이 있어서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는데, 뇌에 혈액 공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서울로 가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라고 떠넘기는 인상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에 사는 형부는 좀 더 힘이 셀까해서 부탁을 해 왔는데, 저는 그런 일은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아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제 아들이지만 성품이 차분하고 말에 설득력이 있어서 그런지 첫 번째 전화를 한 건대 병원에서 진료 날짜를 잡아 주어 지난 13일에 상경해서 MRI 등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그날로 다시 집으로 내겨갔는데, 환자의 성격에도 문제가 있었는지, 걱정하지 말고 추이를 지켜보자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답니다. 저는 그 의사 선생님의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지만, 일단은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한 나병환자를 주님께서 고쳐주셨다는 일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서에는 유독 치유기사가 아주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나병환자를 고치신 일화는 우리들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큽니다. 나병이란 현대 의학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의사 한센1841~1912에 의해서 병의 원인과 치료약이 개발되었기 때문에 한센씨병이라(Hansen's disease)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시 <보리피리>의 작가 한 하운은 평생을 이 나병의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발병하지 않고 있는 질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세기의 세계는 이 나병의 위력에 맥을 추지 못하고 있었으며, 주님은 이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본문에는 예수님께 와서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선생님은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주실 수 있습니다.”고 청하였고, 주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에게 손을 갖다 대시며, “그렇게 해 주겠다. 깨끗하게 되어라.”하시자 그가 깨끗이 나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나환자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다만 사제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깨끗해 진 것을 증명하여라.”고 하였습니다. 병에서 자유해진 사람에게 함구령을 내리고, 모세의 정결례 규정을 따라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제물을 드리는 법을 따르게 한 것입니다(13:8). 이는 유대인들이 종교적인 순결과 윤리라는 면에서 산모나 시체를 만졌거나 나병처럼 특정 질병에 걸렸거나 유출병 등을 앓았던 사람들에게 회복됨을 공식적으로 알리게 하였고, 제사를 드리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나병에서 깨끗해진 사람은 예수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일어났던 기적을 온 동네방네 퍼트리고 다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히 질문하게 됩니다. 주님은 왜 이 놀라운 일을 세상에 알리는 것을 금했을까요? 마치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시면서도 이를 세 번씩이나 감추도록 명하신 소위 <메시아 비밀> 의도와 비슷한 게 아닐까 합니다. 마가복음서에는 3차례의 메시아 비밀의 말씀이 있는데(8:31, 9:31, 10:33-34), 주님은 이를 은폐에 붙이신 것입니다. 이를 브레데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심을 십자가와 부활로 증명되기 전에 사람들이 알게 될 경우에 오히려 예수를 살아있는 신으로 섬기는 오해를 낳을 것을 염려해서 비밀에 붙였다는 주장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주장할 가치가 있다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논리로 예수님의 기적 행위가 자칫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우치기 전에 엉뚱한 오해나 곡해에 말릴 것을 사전에 막고자 했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신학을 통해서 이해를 넓히는 순 기능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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