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46호(2025. 1. 17. 금요일).
시편 104:16-18.
찬송 1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동성애자들은 으레 동성애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분자 생물학자이자 남성 동성애자인 딘 해머가 1993년에 내놓은 연구 결과를 근거로 한다. 태아기를 함께 보낸 ‘일란성쌍둥이’는 성적 지향조차 그에 근접할 정도로 일치해야 한다. 2000년 이후 발표된 세 건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란성쌍둥이의 동성애 성향 일치 비율은 10% 안팎에 불과했다.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반하는 큰 문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2. “레위를 부르심(13-17절)”과 “단식에 대한 질문(18-22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신앙생활에는 특별한 규제나 원칙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대로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 오랜 시간 지속할 수가 있습니다. 우선 신앙하는 내용에 큰 문제가 없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내용 못지않게 그 방법에서 오는 문제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제 친구 한 분은 교회의 제도에 대해서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의 행태에 대해서 많은 불만을 갖고 제게 여러 차례 질문을 했습니다. 얘기를 듣는 중에 많은 반성을 하였고, 고쳐야 할 문제들이 한 둘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평신도 일꾼들의 직분에 관한 것들이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이른바 장로와 권사제도에 대한 것인데, 교회에서는 나름대로 교회법을 가지고 관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게 정당하지도 않고, 투명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마치 매관매직하는 듯 하다는 점입니다. 교회 출석이나 봉사 생활 그리고 교회를 짓고 관리하는 등 재정에 관한 기여도 등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외에 목사에게 충성하는 사람을 우선한다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언제나 빼놓을 수 없는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은 단식에 관한 질문을 제자들이 하고 있습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금식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둘 다 맞는 말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단식으로 유명했던 것 같습니다. 70년대 그리고 80년대까지만 해도 저의 고향교회 등은 금식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웬만한 문제만 생기면 목사님들은 사흘간 금식기도를 권유했습니다. 교인들이 따라만 준다면 참 좋은 충고라고 생각합니다. 3일만 금식하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게 되고, 무엇보다도 혈기가 죽고 겸손모드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은 신앙생활은 없다 하겠습니다. 저 역시도 금식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면서도, 다른 종교인들처럼 금식을 권하지도 가르치지도 않는 것이 이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매우 조심스럽게 질문했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세례요한의 제자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는 금식을 우리만 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저도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금요 철야기도회를 정기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금식기도를 한 적도 있었지만 매 주마다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방언기도를 공식적으로 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해를 받기도 하고, 소극적으로 신앙을 가르친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금식기도를 적극적으로 말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저항(?)이 많았을까 짐작이 갑니다. 주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금식할 때와 금식해서는 안 될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과 제자들의 공동체를 혼인 잔치에 온 신랑과 그 신랑의 친구들에 비유합니다. 혼인잔치는 행복과 기쁨이 가득한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풍성한 음식도 준비하고 노래와 춤도 마련된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에서는 웃음과 즐거움이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혼인잔치와 같은 예수 공동체가 금식을 하고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금식의 성격이 어둡고 무겁고 때로는 슬픔과 비장함도 짙게 묻어 있는 자리라고 할 때, 금식은 혼인잔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삶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니 절망과 탄식의 자리에선 금식이, 혼인자리에서는 기쁨 가득한 노래가 어울린다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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