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62.

시편 105:28-30.

찬송 25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는 크리스천이든 아니든,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귀한 의미를 생각나게 한다. 사랑의 십자가, 감사의 십자가, 위로의 십자가, 그리고 소망의 십자가 등 등. 서양에는 십자가 교회가 많이 있다. 기독교 진리의 핵심에 십자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엔 십자가 교회가 매우 드물다. 고난으로만 생각하는 때문이다. 그게 슬픈 현실이다.

 

2. 주현절후 넷째 주일의 사도서간 고전 13:1-13을 본문으로 사랑으로 충만한 삶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고매한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께서 유행가 가수 패티 킴씨에게 전화를 걸어, 부부와 자녀들이 너무 사랑스럽다며 계속 그렇게 살라고 말하고 싶다 했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패티 킴은 최현배 선생님의 장례식에서 조가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온전한 사랑에 눈뜰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3-5).

모든 사랑은 온전한 사랑과 반쪽뿐인 사랑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의 기쁨이 있는가 하면, 사랑의 아픔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기쁨을 희망하지만, 사실은 사랑의 아픔 혹은 사랑의 슬픔이 더 많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결혼식 주례사에서 사랑의 기쁨보다는 사랑의 아픔을 더 많이 강조했습니다. 사랑의 기쁨은 그것을 얻으려고 바친 땀과 수고가 너무 컸기 때문도 그렇지만, 실상은 위장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에 반해서 사랑의 아픔은 누구에게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진정성을 갖는 현상인 때문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아야 하고, 친절해야 하며, 시기도 자랑도 교만도 무례하지도 사욕을 품어서도 성내서도 앙심을 품지도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이란, 오랜 전부터 우리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된 사랑이란 용기가 필요하다 말씀하십니다(6-10).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낭만적인 감정 소비재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은 충분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발산하기도 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하기도 하며, 치우치지 않고 넓은 관용을 베풀기도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나 희망 그리고 인내의 폭도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랑의 영역은 그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신앙의 다양한 은사들이 시들어질 수 있습니다. 예언이나 방언이 멈출 수 있고 사라질 수 있습니다만, 사랑은 언제든지 다시 솟아나는 화수분/貨水盆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망해야 할 신앙의 덕목은 사랑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사랑으로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불완전한 세상에서 사랑만큼은 언제나 완전한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생 힘쓸 사랑하는 삶에는 주님께서 도와주십니다(11-13).

흔히들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 나타났다는 말을 듣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반쪽 사랑이 아닌, 온전한 사랑으로 우리들 인생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친히 고난의 멍에를 짊어지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는 가장 확실한 상징입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들이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유일무이한 신앙의 표지/標識입니다. 미국교회를 심방한 일이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모든 가정들의 거실에는 십자가가 중앙에 걸려 있었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 형통할 때나 힘들고 어려울 때도 그 십자가는 그 가족들에게 언제나 거룩한 힘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랑스러울 수도 있고, 때론 부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짊어지신 사랑의 표지인 십자가는 언제나 우리를 다시 감싸주고 믿음과 희망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3. 오늘은 주성농인교회(우슬초목사 시무)에서 설교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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