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163(2023. 9. 22. 금요일).

시편 시 19:7-8.

찬송 36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조 념 선생이 음악 공부를 위해서 일본으로 건너갔을 당시, 선생의 전공은 본래 바이올린이었습니다. 촉망받는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작곡가로써 발을 내딛게 한 것은 놀랍게도 실연의 상처였습니다. 오랜 사랑 끝에 돌아온 실연의 상처를 달래고자 곡을 쓰기 시작한 것이 남은 생을 작곡가 조 념으로 살게 했지요. 귀국 후 음악활동에 전념하던 조 념에게 또 한 번의 큰 기회가 찾아옵니다. 바로 시인 한하운의 글을 받아들였던 순간이었지요. 오랜 숙고 끝에 완성된 <보리피리>는 음반으로 발매가 되기 전부터 라디오를 통해 알려졌고, 사람들에게 작곡가 조 념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도 고난의 생이라 반추했을 만큼 그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지요. 가곡집 [황톳길]로 더 없이 행복한 시기를 보내던 그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 소식이 전해집니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장남(長男)의 소식이었지요.

    “가슴이 찢어지는 구나. 찢어지는 이 붉은 핏빛 들녘, 캄캄한 땅 위에 별 빛도 죽어. 너도 죽어, 나도 죽어 있단다. 들을 질러서 어디가, 산을 넘어서 어디로. 하늘 바다로 갔구나. 갔구나. 평안히 잘 자라. 잘 가라. 말없이 장자는 갔구나. 이마에 물든 핏빛 붉은 자욱. 캄캄한 땅 위에 별빛도 죽어. 너도 죽어, 나도 죽어 있단다. 들을 질러서 어디가, 산을 넘어서 어디로. 하늘 바다로 갔구나. 갔구나. 내일을 빛나라. 영원히.”

    생의 크나큰 슬픔을 부딪칠 때마다, 작곡가 조 념은 음악을 통해 그 시간들을 견뎌냈습니다. 한결 같았던 마음을 거절당했을 때나 다시 가지 못하게 된 고향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내 몸 같은 장남을 먼저 떠나보내던 모든 순간에도 말입니다. 넉넉하지 못했던 작곡가의 삶에 음악은 정말 가장 순수한 구원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바로 그러한 가절한 마음이 담겨 있기에 작곡가 조 념의 곡들이 모두가 힘들었던 시기에 우리의 마음에도 크나큰 위로가 되었던 것이었을 테고 말입니다. 선생의 아호인 파상은, 파도 파자에 항상 상자를 써, 들고 나기를 거듭하는 파도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파도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생을 담담히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선생이 남긴 가장 큰 유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다시 한 번 조 념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파 상 시 조 념 곡 <잘 가라>이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916일 방송>

 

2.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21-32)”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실을 읽었습니다. 당시의 십자가형은 가장 잔인한 사형제도였습니다. 사형수를 십자가에 손과 발에 못을 박은 후, 옆구리에 창으로 찔러 물과 피를 다 쏟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형벌 말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또 다른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삶을 의미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자기만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인생길을 걸어간다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피할 수 없는 과제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선생들은 제자들에게 누구에게나 십자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슬기롭게 짊어지는 방법에 대해서 조언을 금치 않았던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일찍부터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학문에 정진하도록 권장하고, 체력을 증진시키는 것이란,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데 도움이 되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입주 가정교사를 하였는데, 6개월쯤 되자 제가 가르치던 학생이(2)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일곱 번째 가정교사인데, 대부분 6개월이 되면 사표를 쓰고 나가더라는 것입니다. 이제 나갈 때가 됐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그날 저는 오늘 밤이 마지막 수업이라고, 특별한 시간을 갖겠다고 말하고, 저녁 식사를 한 후 집 앞 강가로 나가자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간을 잘 공부하자 부탁했습니다. 그리곤 두 마디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째 부모님 연세가 몇이신지, 둘째 그 지역에서 제일 부자 아버지가 왜 자식들에게 공부를 시키려는 지가 그것이었습니다. 고개만 떨구고 있는 그에게 그것은 부모가 돌볼 수 없는 그런 날이 올 텐데, 그때 자기 십자가를 제대로 짊어지는 실력이라는 준비를 해 둬야 한다는 것을 아신 때문이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다음 가정교사에게 열심히 실력을 닦아서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리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에게 십자가는 제우스에게 대들다가 평생을 가파른 언덕 위로 돌 굴리기를 했다는 시지프스의 형벌일지 모릅니다. 또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로 평생 땀 흘리고 고통을 겪는 삶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십자가를, 주님처럼 당당하게 짊어져야 하겠습니다. 감사하게도 감당치 못할 시련은 없다 말씀하십니다(고전 10:13).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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