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164호(2023. 9. 23. 토요일).
시편 시 19:9-11.
찬송 53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매년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건 메밀꽃 밭입니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의 배경이 된 봉평을 비롯해서 올해는 여러 지역에서 메밀꽃 축제가 한창입니다. 작가 이효석은 환한 달빛 아래 흐드러지게 핀 메밀 꽃밭을, “마치 소금을 흩뿌려 놓은 듯하다.”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소금 알갱이처럼 작고 하얀 그 메밀꽃들은 지금도 은은한 달빛 아래 뽀얗게 피어 있겠지요.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은 벌써 들썩이는 그러한 기분입니다.
“우리 님 손을 잡고 메밀 밭가에 서면, 고운 이슬 뿌린 듯 메밀꽃 피어 있고. 앉을까 말까 고추잠자리 서성거리는데, 노랑나비 쉬지 않고 날고 있으면, 흔들흔들 살래살래 메밀꽃 춤을 춘다. 우리 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반짝이는 달빛을 덥고 메밀꽃 자고 있고. 깨울까 말까 고추잠자리 서성거리는데, 밤바람 숨죽이고 나비들 모여 있으면, 조용조용 가만가만 메밀꽃 꿈을 꾼다.”
달밤의 은은한 서정이 담겨 있는 곡입니다. 달빛아래 하얗게 핀 메밀꽃들이 가벼운 가을바람으로 작게 흔들리는 모습을, 시인은 여리고 낭만적인 언어로 잘 담아냈습니다. 메밀꽃을 주제로 한 가곡은, 이 곡 외에도 소설을 시로 옮기고 곡을 붙인 <메밀꽃 필 무렵>이 알려 져 있지요.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이미지가 워낙 강한 탓인지, 두 곡 모두 들을 때마다, 소설에서 묘사한 봉평의 풍경이 더불어 떠오릅니다. 이 가을 날 어딘가에 있는 메밀꽃밭은, 소설에서처럼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겠지요. 이한현 시 이윤주 곡 <메밀꽃>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9월 23일 방송>
2. “숨을 거두신 예수(33-41절)”을 읽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죽음이란 신비한 두 세계로 향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경향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을 삼가는 경향입니다. 그것은 천국으로 가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죽음을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몇 년 전 한 동료 외국인 교수의 장인께서 별세하셨다 해서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문상객은 없고 가족들이 둥글게 둘러앉아서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곡소리는 없고 웬 웃음소립니까?”하고 들어섰습니다. 그러자 망자가 생전에 가족에게 보여주었던 일화들을 나누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곡소리는 집에서 다 나누었고,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들만 떠올릴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이런 장례식장의 빈소를 배워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주님의 마지막 시간을 잘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이른바 임종의 자리에 일어났던 생생한 일들을 말입니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시편 22:1의 말씀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절망의 소리입니다. 십자가 밑에 있던 사람들 중에는 엘리야를 부른다고 말하였고, 해면(스펀지)에 신 포도주를 적셔 갈대 끝에 꽂아 예수의 입에 대 주며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주나 보자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곤 큰 소리를 지르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여느 임종과 크게 다르지 않지 않습니까? 오랜 지병으로 소리 지를 힘도 없는 조용한 임종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마가복음서 기자는 훗날 주님께서 마지막 소리를 지르시던 그 때 성전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폭으로 찢어졌다 보충했습니다. 주님의 임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로마 백부장의 말인데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구나.”였고,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으로는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로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었고, 그리고 예루살렘에 올라온 많은 여자들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한국 전통은 임종에 누군가가 지켜봤다는 것을 복인이라 일컫는데,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을 외롭지 않았다는 뜻이며, 망자가 마지막 말을 남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마지막 말씀은 자신이 철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슬픔에 가득 찬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매우 평범한 인간의 죽음이었습니다.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사람의 몸으로 세상을 떠나가신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에서도 위로받는 까닭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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