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236호(2023. 12. 4. 월요일).
시편 시 34:4-6.
찬송 36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책에서 이런 글을 봤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일흔 살이라고 할 때, 우리는 3천 번 울고, 54만 번 웃는다고 말입니다. 수학적으로만 계산을 해보면, 한번 울고 난 뒤에 180번 정도 웃을 수 있는 셈인데요. 작가는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 180번이라는 숫자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같은 종족끼리 이유 없이 미워하기도, 서로 죽이기도 하는 잔인한 동물입니다만,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기에 그 웃음이 지닌 의미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얀 목련 피어나는 뜰 악에 마주 앉아/ 이슬 젖은 꽃 잎 하나 바람 안고 사네/ 그대 미소가 몸을 휘 감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재가 되어 불꽃으로 사라져간다 하여도/ 언제나 남을 우리 이야기 끝없이 이어가리/ 언제나 남을 우리 이야기 고이 간직하리/ 어둠 속에 피어나는 뜰 악에 마주앉아/ 눈물 젖은 꽃 잎 하나 바람 안고 사네/ 하얀 그대의 미소 번지는 오랜 밤의 진통 속에/ 재가 되어 불꽃으로 멀어져 간다 하여도/ 언제나 남을 우리 이야기 끝없이 이어가리/ 언제나 남을 우리 이야기 고이 간직하리”
<그대의 미소>라는 제목에서, 미소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가 연상됩니다. 하지만 곡의 분위기는 제목과 달리 조금은 애상적/哀想的이지요.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그 누군가의 미소는 티 없이 밝고 환한 웃음보다, 모나리자에서 볼 수 있는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그러한 미소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그러한 애상 말입니다. 작곡가는 시인의 그러한 마음을 글 안에서 읽어냈던듯 하고 말이지요. 하오기 시 김동환 곡 <그대의 미소>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2월 3일 방송>
2. “이스라엘에 내린 선고(6-16절)”을 읽었습니다. 새해를 앞두고 교회에서는 새해 일꾼들을 세워야 할 과제가 주어졌는데, 갈수록 교회 봉사자(평신도 일꾼을 통칭) 자원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교회에 시간과 물질 등을 내놓기를 꺼려한다는 말입니다. 어느 교회는 봉사자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들의 활동을 홍보부스(booth)를 차려놓고 봉사자들을 모집한다고 합니다. 2010년대만 해도 중국이나 몽골 등 선교지에 재능봉사를 하러 가자고 광고를 하면, 나서는 사람들이 많아서 오히려 선발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때보다는 모든 면에서 여력이 훨씬 더 좋아진 요즘이 참여율이 낮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그런 징후가 수천 년 전에 나타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묵상할 아모스서는 풍요와 번영의 시대가 신앙생활의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열정이 식어버리고, 세속적인 열정으로 바뀌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병들었던 시련의 시절에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약속하기를, 시련을 면케 해 주시면 충성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시련이 걷히고 형편이 기대보다 훨씬 나아졌는데도 불구하고, 감사하기는커녕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버리더라는 말입니다. 또 다른 시련이 오기까지는 하나님의 은총을 까마득히 잊고 말입니다. ‘여측이심(如厠二心)/ 화장실의 두 마음’이라는 말이 있었던 걸 보면, 흔한 인간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예언자 아모스는 남왕국 유다의 시골 마을 드고아의 가정에서 태어나 양과 염소를 치고, 양모를 팔며 뽕나무를 길러 누에를 기르는 등, 농부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예언자로 부르셔서 북왕국에서 활동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구체적으로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쌓이고 쌓인 죄를 지어서 벌하고야 말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내용은 2천 년 전이라는 시대 배경에서는 흔한 일일 수 있겠으나,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몇 가지만 언급하면, 빚을 졌다고 해서 종으로 팔아넘기기도 하고, 짚신 한 켤레 값에 가난한 사람을 팔아넘기고, 힘없는 사람의 머리를 땅에 짓이기도 하고, 저당 잡은 남의 겉옷을 제단들 옆에 펴놓고, 아비와 자식이 한 여자를 겁탈하는가 하면, 벌금으로 받은 술을 성전에서 마시는 짓 등을 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그 기초가 윤리적이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그렇지 못한 삶을 살고 있더라는 말입니다. 최근 어느 종교 지도자들이 가사장삼/袈裟長衫을 입은 채로 호텔 스위트룸에서 노름을 하는 사진이 유튜브에 올라왔는데, 21세기의 비윤리적인 종교 지도자들의 흔한 생활 모습이라 하니, 풍요와 번영의 시대에 세태를 따르는 종교현상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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