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07호(2024. 5. 23. 목요일).
시편 시 68:1-3.
찬송 36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도봉산을 오르다 보면 도봉서원을 재건축하느라 요란하다. 그 남쪽 경계선에 서울 미래 유산으로 김수영시비가 나지막하게 서있다. 김수영은 <풀>이란 시를 썼는데, 중간 연이 이렇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그런가 하면 나태주는 <풀꽃>이란 시를 썼는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전자는 4.19혁명 시대의 저항시라고 하고, 후자는 순수시라고 한다.
나는 게으름을 자연스러움으로 포장하곤 한다. 10평 정도의 텃밭과 또 10평 정도의 꽃밭과, 30평 정도의 잔디밭이 있는 시골집을 샀는데, 처음 생각은 텃밭을 제외하고는 꽃밭과 잔디밭은 제멋대로 두려고 했다. 처음엔 온갖 풀들과 꽃들이 피었다 지곤 하였다. 나는 참 좋았다. 그런데 이웃집들과는 너무 달랐다. 소나무, 모과나무, 감나무, 복숭아나무까지도 분재마냥 머리를 깎아줄 뿐 아니라, 꽃들도 동 서양 꽃들을 죄다 옮겨 심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엔 민들레, 강아지똥 풀, 클로버 등은 잡초로 천대를 받고 있다. 내 땅에서도 내 마음대로 풀조차 못 기르고 있다. 박성완, 24. 5. 21.
2. “박해를 각오하라(16-23절)”을 읽었습니다. 제자들을 전도에 파송하면서 하신 말씀으로, 일견 전도의 어려움을 말씀하신다 생각할 수 있겠으나, 좀 더 넓게 말하자면 제자도의 시련에 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일, 예수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일은 시련과 고통의 길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사실을 처음부터 제자들에게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도중에 이럴 줄 몰랐다거나, 잘못 생각하고 이 길을 택했다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남대문 시장에서 대학 2년 선배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안부를 물은 후 대뜸 지금도 목회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니까, 자신은 경제적으로 조금 준비를 한 다음에 목회를 해 보려고 했는데, 그게 차일피일 잘 안 되고 있다며 저를 보고 부럽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목회자가 되겠다고 서원을 하였거나 공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었지만, 어머님의 소원이라 하셔서 효자는 못되어도 그만한 일쯤은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이 길에 들어섰는데, 많은 분들이 측은지심을 가지고 격려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분들이 생각하신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것과 조금은 찌질 하게 살 것이라는 우려였을 것입니다. 그 당시 열악한 교회 형편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국민일보에 거의 연재되다시피 나오는 목회자들의 어려운 얘기들은 마치 미처 몰랐던 일을 뒤늦게 깨달은 것인 양 동정론을 흔드는 것 같습니다. 한번은 청도에서 중국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성경 세미나를 가졌는데, 주제와는 다르게 중국교회 지도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듣고 코칭 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한 젊은 목사님은 목회를 성실하게 해서 교회 교인 수도 약 5백 명이나 되고, 헌금도 넉넉하게 해서 교회가 계속 건물도 증축하고 땅도 넓힌다 했습니다. 그런데 목회자 생활비만큼은 겨우 최저 생활을 할 정도라면서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바울 같은 지도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시련과 역경 속에 있어야 기도생활과 일상생활이 모든 교우들에게 모범이 될 거라면서 말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마치 양을 이리떼 가운데로 내 모는 것 같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뱀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 같이 양순하라고 하신 후, 너희를 법정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조차 매질할 사람이 있으며, 총독과 왕에게 끌려가 재판을 받고, 그들과 이방인 앞에서 나를 증언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리부터 겁을 주는 말씀처럼 들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하시려는 뜻이었습니다. 어떤 경우를 만나든 성령께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를 일러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마치 종말의 때처럼 형제끼리 서로 사지/死地로 넘겨주고, 부모와 자식이 서로 고발하고 죽게 하며,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신학교에서 가르칠 때,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됩니다. 작은 시련 앞에서 낙심하는 사람들을 볼 때 말입니다. 부귀영화는 고사하고 오히려 배고픔과 미움과 조롱을 받는 길, 까닭은 세상의 길과 다른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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