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26(2025. 9. 19. 목요일).

시편 82:6-8.

찬송 7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의재필선/ 意在筆先, 붓질보다 뜻이 먼저다 는 의미입니다. 구상이 선 뒤에야 붓을 드는 법이다. 의욕을 앞세워 덮어놓고 달려들면 아까운 화선지만 버린다. 왕의지/王義之<위부인의 필진도 끝에 제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글씨를 쓰려는 사람은 먼저 벼루와 먹을 앞에 두고 정신을 모은 채 생각을 가라앉힌다. 미리 글자의 형태와 크기 기울게 쓸지 곧게 쓸지 휘갈겨 쓸지를 생각을 해서 근맥/筋脈이 서로 이어지게 하여 뜻이 붓보다 앞선 뒤에야 글씨를 쓴다.”

정 민, 옛 사람이 건넨 네 글자, p.155.

 

2. “예루살렘 회의(1-11)”을 읽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어렵게 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성경을 전체적인 안목으로 관찰하고 해석하는 것과 문자적인 의미를 놓치지않으려는 해석 사이에서의 충돌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문제는 성경 해석에서 많은 발전을 이룬 21세기에도 종종 발생하는 것이고 보면, 초대 교회에서는 얼마나 빈번하게 부딪혔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문제는 이방인 교회를 개척하고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하러온 바울과 바나바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 논쟁점이 너무도 크고 중대한 할례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할례는 아브라함 시절에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의식으로 할례를 행하게 했던 데서 출발합니다. 생후 8일이 된 사내아이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였고 첫 할례는 모든 유대 남자들에게도 시행케 하였습니다. 그리고 훗날 유대인으로 살기를 원하는 남자에게 할례를 시행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 할례의식은 유대인 민족으로 입회하는 성격이 강해서 이방인들과는 무관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이방교회를 지도하던 바울과 바나바는 할례의식 없이 세례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통 바리새파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할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강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예루살렘 회의가 소집되었고, 정식 의제로 토론에 붙여진 것입니다.

    바리새파 출신의 사람들이 제기한 문제는 기독신자가 될 사람은 누구나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참동안의 토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베드로는 세 가지 이유로 이방인 성도에게 할례의식을 행하는 것을 강제할 수 없음을 진술하게 됩니다. 첫째는 할례는 유대인들에게 주신 하나님과의 약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제대로 실천에 옮기지 못한 점을 들어서, 이방인에게 이 짐을 지우는 것은 정당성이 없음을 지적합니다. 둘째는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 역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세례를 받을 수 있게 허락한 사마리아인과 베니게인들에게 행한 세례를 강조한 것입니다. 셋째는 할례는 성격상 유대인으로 입회하는 의식으로 이방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번지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 예루살렘 의회는 베드로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원만하게 합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최초의 공의회는 은혜스러운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3. 오늘부터 2006년판 찬송가를 사용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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