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03(2024. 12. 5. 목요일).

시편 96:1-3.

찬송 8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꿈을 꾸는 줄 알았습니다. 지난밤은 새하얗게 밤을 새우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153분이 걸린 시간이었다고 아나운서가 말했을 때, 21:1-14절이 떠올랐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세 번째로 제자들을 찾았을 땐, 모두 옛 생활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어부출신 베드로와 나다나엘 요한과 마가는 바다에 나가 그물을 던지고 있었고, 주님이 몇 마리나 잡았소?”라고 물었을 때, 한 마디로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오른 편에 던지게 했고, 큰 물고기 153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153이 시간으로 전해왔습니다. 비상계엄 선포에서 비상계엄 해제 결의에 걸린 시간이라고 말입니다.

 

2. “데살로니가를 다시 가보고 싶어 하는 바울(1-13)”을 읽었습니다. 이 구절 안에 궁금하게 하는 동사가 나오는데, 개역성경과 공동번역 성경이 동일하게 참고 견딘다는 동사 스테고(στεγω)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참다못하여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1, 5). 무엇을 참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합니다. 그것은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우들을 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와 그 일행들은 아테네에 남아 있기로 하고 동역자 디모데를 보내게 된 것입니다.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습니다만, 바울 사도가 자신의 마음처럼 달려가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또 다른 사정 때문에 디모데를 보내게 된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가령 적당한 사례가 될지 모르지만, 제가 중학생일 때 전도한 친구가 있는데, 시골 교회의 장로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목사인 제게 자주 불평을 늘어놓곤 하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교회 지도자들과는 너무 다르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정도 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그런 모습이 아쉽다는 것입니다. 몇 번 그런 얘기를 나누다가 보니까, 한번 찾아가서 손을 잡고 감사와 격려를 하고 싶은데, 선뜻 그리지 못하는 제 마음도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에게는 큰 위로와 기쁨을 준 교회입니다. 아마도 빌립보에서 겪은 시련을 감싸주고, 복음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한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말할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그들을 칭찬하고 자랑해 왔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랑스러운 사람들에게서도 부실한 면이 없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연륜이 어린 사람들에게는 책망보다는 격려와 칭찬이 더 필요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평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대 내외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믿음 때문에 겪는 시련과 역경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하고 있지만(8), 보통 신자들이라면 신앙으로 사는 것이 왜 이렇게 힘이 드느냐며 불평도 하고 응석도 부릴 수 있겠지만, 말없이 묵묵히 잘 참고 견디는 것이 너무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밤낮으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편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멀지 않은 장래에 그들을 찾아보러 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듯, 여러분도 서로를 사랑하고 또 모든 사람들도 사랑하기를 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으로 나설 수 있기를 빌고 있습니다. 어제는 한 십여 년감 연락이 없었던 옛 부산 교우가 전화를 해왔습니다. 저보다는 두 살 위라고 했습니다. 104살이신 친정모친을 병간하다가 재작년에 하늘나라로 보내고, 이제는 아들 효도를 받으며 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까 앞으로 맞을 일보다는 지나간 옛 일들이 그립다고 했습니다. 힘들게 살았던 70년대에 부산 YWCA에서 봉사를 많이 하던 분이셨습니다. 팔십하고도 두 해나 더 사셨으니,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없다며, 오직 아름다웠던 시절의 고생하던 일들이 생각난 것이라고 합니다. 그분은 대학생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 남다르게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당신 살림살이도 어려웠는데, 시간을 내어 밤새도록 영어책을 녹음해서 전달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제가 드린 인사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자랑스럽게 서는 날을 기다리자고 덧붙였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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