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01(2024. 12. 2. 화요일).

시편 95:7-8.

찬송 50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100달러 화폐 속에 있는 얼굴의 주인공 벤자민 프랭클린(1706.1-1790.4)은 수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그 중에 하나는 돈이면 무엇이든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인데,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건강, 성공, 출세 등 모든 다른 것들도 대입해 볼 수 있다.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닌데 말이다.

 

2. “바울의 데살로니가 전도(1-12)”을 읽었습니다. 바울의 선교여행 기록을 읽을 때는 사도행전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상호 보완적인 내용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첫 관문이었던 빌립보에서의 선교는 문자 그대로 혹독한 시련이었습니다. 매로 치고 손과 발을 쇠사슬로 묶어서 빌립보 감옥에 가두는 등의 경험이 고스란히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16:11-40).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곳 빌립보의 유력인사가 미친 여인을 점쟁이로 고용 돈벌이를 하고 있었는데, 이를 불쌍히 여긴 바울사도가 그 여인은 고쳐주자 더 이상 점을 칠 수 없게 되어 수입이 끊어진 때문에 바울을 고소해서 시련을 당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선행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돈벌이 수단을 끊어버린 악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그런 몸을 가지고 또 다시 찾아간 곳이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데살로니가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어떻게 전도사역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빌립보에서 사도 일행이 겪은 시련에 대해서 보고 겸 해명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1-4).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는 약 100마일(160km) 떨어진 곳으로, 바울 사도의 행적이 데살로니가에 알려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솔직하게 빌립보에서 겪은 시련에 대해서 솔직하게 보고합니다.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이엇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도의 복음 선교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두 번째는 사도의 선교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5-6), 세 번째는 사도의 참된 권위는 명령과 책망으로가 아니라, 유모가 자녀를 기름과 같다고 말입니다(7-8), 넷째는 복음 전파를 이유로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힘쓴 것은 그들이 증인이라고 말입니다(9-10), 마지막으로 선교의 최종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합당히 사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새삼스럽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 선교에 참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제가 39주간 중국과 몽골 그리고 베트남에서 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성경 세미나를 지도하였는데, 여름에는 의료 미용 안경 한의학 등 봉사자들과 함께 참여해서 많은 성과를 올렸다고 합니다만, 사실은 저는 고용된 선교사에 불과했습니다. 모든 비용은 한 독지가가 전액을 부담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한 다음에 정산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나름 많은 선교지 지도자들이 한국에 와서 한 단계 높은 신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재정지원이 없었다면 단 한걸음도 떼어 놓을 수 없는 선교활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 바울의 선교활동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온 삶을 헌신하며 선교에 임할 수 있었을까를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교지는 타종교와 타문화라는 것 때문에 항상 위험 요소가 있습니다. 제가 목격한 경우에는 우리 기독교회가 타종교와 타문화에 대해서 공격적이고 대립각을 세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선교지에 조용히 적응해가기 보다는 땅밟기를 한다든지, 마귀 소굴이라며 사원에 불을 지르라고 한다든지 해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곤 하였습니다. 우리는 선교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선교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진지한 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참여하는 일이며, 그러기 위해서 선교지의 사람들과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강하고 전투적인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인격적이고 희생적이며 겸손한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는 않으면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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