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26호(2024. 12. 28. 토요일).
시편 102:4-7.
찬송 30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아 살해(infanticide)는 의도적으로 가족이 젖먹이를 죽이는 것이다. 옛 사회에서 일부 영아 살해가 허용되었었으나 지금은 비도덕적이며 범죄 행위의 하나로 간주된다. 하지만 영아 살해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서구 사회에서는 부모의 정신과 질환이나 폭행 등에 의해서 나타나는 반면, 후진국에서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남아 선호 사상 때문에 여아 살해의 비율이 남아 살해의 그것보다 높게 나타난다.
2, 오늘은 우리 모두가 짧은 시간이나마 그 옛날 아기 예수를 대신해서 죽임을 당한 많은 베들레헴의 영아들을 위해 슬픔을 품어보아야 할 것을 제안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별을 따라 유대나라 왕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동방의 박사들이 헤롯왕에게 어린 유대 왕자를 만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헤롯왕은 화근/禍根을 없애버린다는 생각에 베들레헴 주변의 두 살 미만의 사내 영아/嬰兒들을 살해하라 명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인류사에 이보다 잔악한 살인사건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또래라는 것이 죽임을 당한 이유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동방박사 이야기가 주는 장엄한 서사/敍事에 매몰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동방의 어느 문명사회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찬양하고 축하하기 위해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라는 당시로써는 가장 귀한 선물을 들고 찾아와 경배를 드렸다는 것에 취해 버렸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화려하고 극적인 장면 뒤에 숨겨져 있었던 수많은 영아들이 무참히 죽어야 했고, 그 어미들의 애끓는 통곡을 귀 막고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역설/逆說인가 하는 점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있어서 이 영아들의 희생과 그 부모들의 아픔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가끔 예수님의 십자가를 잠깐이긴 하지만 대신 짊어져 주었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생각합니다. 그는 북 아프리카 리비아란 나라에서 예루살렘을 찾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의 피가 흘러서 명절을 지키러 왔는지, 아니면 돈벌이를 찾아서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가족들도 성경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보통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내와 아들까지 훌륭한 크리스천이 되어, 훗날 바울은 시몬의 아들 루포를 자신의 친구라고 했고, 그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라고 기억해 주었습니다(막 15:21, 롬 16:13). 우리의 신앙이란 기억에 많이 의존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억이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테제의 노래 가운데, “Jesus remember me. when you come into your kingdom.”라는 게 있는데,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혔던 우편에 달린 강도가 한 부탁이었습니다(눅 23:42).
이 영아 살해 사건을 기록한 마태복음서 기자는 그 모친들의 울부짖음을 라헬이 베냐민을 출산하면서 숨을 거두면서 흘린 눈물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라헬로 그녀는 오랫동안 자식을 낳지 못하다가 두 아들을 낳았는데, 큰 아들 요셉은 아버지 집 라반의 집에서 출산하였으나, 둘째 아들 베냐민은 야곱이 자기 집으로 돌아온 후에 출산하였는데 그곳이 벧엘에서 24km 떨어진 에브랏이었습니다(창 35:18). 훗날 예레미야는 라헬이 자식을 두고 죽는 어미의 마음을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식을 생각하며 우는 어미들의 마음으로 표현한 것입니다(렘 31:13-20). 몽골에 가면 지금도 마을 뒷산 작은 봉오리에 돌무더기들이 있는데, 어린아이들의 무덤이라고 합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어린 아이들의 무덤은 땅에 묻지 않고 항아리나 돌무더기를 쌓아 두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보기도 했습니다. 이 또한 그를 사랑했던 어미들이 찾아와 어루만져주도록 배려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영아 살해 사건은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 철부지 생명들이 철든 어른들을 위해서 제물이 된 사건으로도 해석되고, 순백의 천진난만한 생명들이, 온갖 죄악으로 점철된 죄인들을 대신한 산 제물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동안 그들을 잊고 살았던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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