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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5.03 근본 목적은 무엇일까? / 레 23:1-22.

묵상자료 8387(2024. 5. 3. 금요일).

시편 시 63:1-3.

찬송 36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마천루 속에 파묻혀 겨우 머리만 내밀고 있는 교회당 종탑을 볼 때면, 겨울엔 너무 춥게 보이고, 봄과 가을엔 너무 헐벗어 보이고, 여름엔 너무 불쌍해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골 길을 지나가다가 교회당을 보면 한번 들릴까? 요즘 어떤 기도를 많이 하시냐고 물어볼까?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요즘엔 왜 우리 교회가 이렇게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을까? 한숨만 나온다. 전국 명소에 낀다는 아산 은행나무 길 옆에는 오래 전에 폐가가 된 교회당이 하나 덜렁 서 있다.

    ‘마을 한쪽에 처음으로 세워졌던 작은 천막교회/ 예수쟁이는 몰아내야 한다면서/ 그 비방/祕方으로 팥죽을 쑤어 예배당 주변을 물들였던 마을 사람들/ 전도사는 며칠을 굶은 채/ 그 안에서 기도만 드리고 있다며 조잘조잘 전해주는/ 내 열 살 또래친구들/ 돈을 주든지 밥을 주라고 졸라대어/ 밥에 돈까지 챙겨 엄마와 함께 찾아갔던 그 예배당/ 몇십 년이 지난 지금/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는 장엄한 건물/ 자리를 꽉 채운 교인들/ 그런데 정작 우리 믿음의 양식은 어디쯤 와 있을까

    신학을 공부하고 시를 쓰시는 신을소 교수님의 눈가에는 감개무량이 아니라, 화난 무서운 모습으로 보인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은 천막교회도, 장엄한 교회당도 아닐 것이다. 메마른 영혼들의 타는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줄 믿음의 양식을 찾을 수 없는 까닭이리라.              신을소 시집, [외출, 믿음의 양식], p.56. 박성완, 24.5.2.

 

2. “축절들(1-3)”, “과월절과 무교절(4-8)”, “햇곡식을 바치는 축절(9-14)” 그리고 추수절(15-22)”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햇곡식을 바치는 축절, 오순절에 대해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은 유목생활을 하던 분들이었습니다. 적어도 아브라함으로부터 모세 때까지는 그래왔습니다. 그러니까 일정한 장소에서 생활하는 농경문화와는 달리 풀을 따라 계절을 따라 짐승들을 먹일 풀을 찾아서 이리저리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바야흐로 가나안 생활을 하게 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을 것이며, 자신들의 신앙생활에서도 많은 오해와 곡해를 경험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농경생활에 대한 많은 실패와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가나안 땅 현지에 살고 있는 토착민들의 생활방식을 답습하게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농경문화를 배운다는 처지에서 관용을 하였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그것이 우상숭배인 것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가령 우리나라에서 전해오는 농경문화가 있는데, 유월 유두라는 행사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선 초기의 성현成俔유두날 수단병水團餠을 마시면서[流頭日 飮水團餠]’라는 작품을 지은 바 있는데, 시간이 흘러 농사짓는 일에 수고하는 머슴과 같은 일꾼들에게 햇보리나 감자로 잔치를 열어 쉬게 했던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배경은 신앙적인 바탕이 중요하였기에, 첫 곡식을 거둔 후 첫 곡식단을 사제에게 바치게 하였고, 사제는 그 첫 곡식을 야훼 앞에서 좌우, 상하로 흔들어 바치게 하였는데 이를 요제/搖祭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해에 태어난 양 한 마리를 번제/燔祭로 바치게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를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그리고 제주/祭酒로 포도주 1/4힌을 바치게 했습니다. 참고로 유대인의 제사방법으로는 번제와 요제이외에도 거제/擧祭와 전제/奠祭가 더 있는데, 거제란 제물을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는 의식을 행하는데, 이는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을 다시 하나님께로부터 되돌려받는 의식으로 제사장 몫으로 드리는 제물을 말하고, 전제란 제물에 피를 뿌리는 의식, 혹은 포도주를 뿌리는 의식을 의미합니다. 이런 복잡하면서도 까다로운 절차의 제사를 드린 것은, 절차 하나 하나에 대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며, 이를 부모가 자녀에게 잘 가르쳐 그 의미를 이해하도록 했을 것이나, 그 근본목적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물을 향해 가리키고 있다 하겠습니다. 예수는 모든 율법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후의 제물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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