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76호(2024. 11. 8. 금요일).
시편 90:14-15.
찬송 52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1년에 약 5천명이나 되는 여인들이 <명예살인>이라는 죄목(?)으로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자매들의 손에 목숨을 잃고 있다 합니다. 이교도나 이민족과 결혼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것이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살인자들이 관습이라는 미명/美名으로 가벼운 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소통의 광장 광화문에서는 <차금법>에 반대하는 집회가 주일마다 열리고 있는데, 그 열기와 함성은 암묵적 명예살인의 수준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그리고 그 최후의 판결은 하나님 손에 맡기는 것은 어떨까요?
2. “니느웨의 멸망2(2:13-3:7)”을 읽었습니다. 미국의 대선과 상원 하원 주지사 등의 선거결과는 공화당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나중에 분석 결과를 보면 알겠습니다만, 매우 충격적인 결과가 될 전망입니다. 트럼프를 반기지 않는 것이 세계적인 현상입니다만, 미국이 지난 2백여 년간 쌓아올린 세계를 위한 공헌이 미국 우선주의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더군다나 민주주의의 산 표본처럼 생각해 오던 국가나 사람들에게는, 자국 우선주의 앞에서 이렇게 맥없이 넘어지는 것을 보고, 과연 민주주의란 허상인가 하는 생각에 절망하며, 새로운 질서를 모색해야 할 처지가 되었나 염려하고 있습니다. 선거에 패배했다 해서 의사당을 불법으로 점거하고, 온갖 야만적인 행태를 저지르던 그 깡패 같은 무리들이 이제는 정당성마저 얻게 되었으니, 앞으로 보일 추태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런 판국에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여인들의 치마폭에 쌓여서 정치실종이라는 전대미문의 혼란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난세에 위인이 난다는 속담을 기대해야 할 어쭙잖은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핸가 큰 딸 아이를 시집보내던 해에 제가 참 좋아하던 목사님이 별세를 하신 것입니다. 그때 세상이 노랗게 변하는 것을 보고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며칠을 캄캄한 세상을 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30년 가까이를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따뜻한 글을 읽게 해 주셨던 어느 문인이 별세하셨을 때도 마음 한 구석이 퀭하니 뚫린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고약한 기분들이 쌓이다 보면 아름다운 세상도 낯설어질 것 같습니다. 제발 잘 살아들 계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함께 요단강을 건널 때까지는 말입니다.
니느웨의 멸망 2를 읽었습니다. 휙휙 채찍소리, 윙윙하는 병거의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들, 전쟁터의 무서운 장면들입니다(3:2-3). 니느웨의 위풍당당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 나라를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시겠다 하십니다. 그 도도하던 병거들을 불살라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게 하시고, 사자와 같이 용맹한 젊은 군사들을 칼레 베어 넘어트리실 것이며, 노략했던 수많은 금은보화들을 다 흩어버리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온갖 희망의 소식을 전해 주던 사절들의 말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2:13). 그 까닭은 니느웨는 피의 성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거짓과 포악이 가득하고, 남의 것들을 빼앗는 일에 길든 때문이었습니다(3:1).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음행 때문이었습니다(3:4). 성경에서 사용하는 음행이란 단어는 우상숭배를 찾아나서는 세상의 풍조를 말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약이 되는 쓰디 쓴 말보다는 꿀 송이처럼 달콤한 여인의 말에 마음을 다 빼앗기곤 합니다. 예나 제나 돈벌이하는 가장 쉬운 술법은 미인계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치도 사회도 교육도 그리고 심지어 종교까지도 말입니다. 니느웨는 2,700년 전에 실존했던 앗수르의 수도만이 아닙니다. 지금도 니느웨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 어딘가 에서도 성업/盛業중이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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