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75(2024. 11. 7. 목요일).

시편 90:11-13.

찬송 33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발명의 왕이라 불리는 에디슨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실패해 본 적이 없다. 다만 효과가 없는 만 가지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는 갈린다고 본다.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깊이 생각해 보면 그게 성공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실패에서도 진리를 배우는 것이다.

 

2. “니느웨의 멸망(1:15-2:12)”을 읽었습니다. 모든 일에서 세우기는 어렵고 헐기는 쉽습니다. 나라를 세우는 것이나 일가/一家를 이루는 일인 많은 시간을 들여서 생각하고 준비하고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후세들은 자신들의 수고와 노력을 기우린 일이 없었기 때문에, 하늘에서 떨어진 행운인양 그것들을 지키려고 노력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인지, 애틋하거나 절실한 노력 없이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후세들에게 역사를 잘 가르쳐야 하고. 그 결과 선조들이 어려움 속에서 이루어놓은 것들을 소중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할 과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나에게 하신 니느웨에 대한 경고는 40일 후에 멸망할 것이라 예언했었는데(3:4), 그러나 니느웨는 요나의 경고를 듣고 회개하여 그로부터 200년이나 유예기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많은 고통과 아픔을 가져다 준 나라였습니다. 그러므로 니느웨가 멸망당한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희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는 찾을 수 없으나, 10:5-8에서는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이스라엘을 책망하는 뭉둥이로 사용하셨으나, 그들이 교만하고 악행을 하였음을 지적하고, 14-21-23에서는 이스라엘의 배교와 거짓 종들과 무너진 공의에 대한 징계의 몽둥이로 바벨론과 앗수르를 사용하고 계셨고, 42:21-22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칼과 염병을 가져오는 자들로 사용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메데와 바벨론의 연합군에 의해 니느웨를 멸망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저런 실수를 하곤 하는데, 죄를 짓는 데에는 어떤 특별한 문제들이 있는 줄로 생각하는 경향이 그것입니다. 가난이나 질병 그리고 부조리와 같은 사회적인 병폐가 죄를 짓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고 진단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진단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중립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난이나 질병 그리고 부조리와 같은 것들은 심각한 문제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그리고 이런 세상을 살아갔던 선배들의 삶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심각한 문제라고 여길 수 있는 것들 때문에 위대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가난과 배고픔 때문에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또한 질병이나 사회적 부조리 때문에 그것들을 극복하고 잘 이겨내려고 힘쓴 덕분에 위대한 인물이 된 경우도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세계적인 문학작품들의 출발선이 바로 이런 문제들이었던 것입니다. 저를 고등학교 때 담임으로 가르치신 선생님께서 훗날 술회하시기를 학교에서 월급을 제 때 받지 못해서 아침 식사도 거르고 첫 시간을 가르칠 때가 가장 힘들었다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배가 너무 고프셔서 학생들에게 수학 문제 하나를 칠판에 써 놓고 풀어보라 말씀하시고는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교실 앞에 서 계셨다고 했습니다. 마침 한 학생이 헐레벌떡 뛰어 오기에 어디 갔다 오느냐고 물으니, 월사금을 받아서 가져오느라 뛰어온다 했답니다. 그래서 학년과 이름을 묻고는 그 돈을 받아서 학교 앞 국수집에 들려 국수 한 그릇을 먹고 와서 우리들을 가르치셨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당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보람 있던 시절이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말씀을 들으면서 눈물을 훔쳤습니다. 고교 졸업 48년 만에 들은 말씀이었습니다.

 

3. 어제는 저의 귀빠진 날로 이제 여든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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