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71호.
시편 89:49-52.
찬송 23, 260, 45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영국의 정치가 존 사이먼(1873. 2 - 1954. 1.)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지혜의 핵심은 올바른 질문을 할 줄 아는 것이다.” 제가 예배학을 배우러 미국 미네소타 주의 루터세미너리에 갔을 때, 교수님은 개회기도를 하시면서, “주님, 오늘도 저희에게 질문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질문 그것도 올바른 질문을 하는 삶이라면 잘 살고 있는 것일 겝니다.
2. 성령강림절 후 스물넷째 주일의 구약성경 신 6:1-9을 본문으로 “인생에서 행할 두 가지 일”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인생의 석양을 맞은 친구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티타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의례 건강이야기로 화제가 옮겨갔습니다. 그런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몸에 좋은 음식이며 몸에 좋은 약에 대해 관심을 표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쉐마(들으라) 교리를 자랑스럽게 지키고 있습니다(4-5절).
아이들이 말귀를 알아듣는다 싶을 나이에 가훈을 가르쳐야 하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를 쓴 긴 액자를 거실 중앙에 걸어두었습니다. 구당서(舊唐書)의 <효우열전(孝友列傳)>에 전하는 이야기인데,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지나서 그 액자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다가 그 자리에 <옥수동교우 가정>이라는 작은 액자를 걸어두었습니다. 평생 목표다운 것을 정하고 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유대인들을 위대한 민족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사랑할 대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세상을 다스리시는 만군의 주 야훼 하나님이셨습니다. 참으로 멋있는 민족이고, 참으로 자랑스러운 민족입니다. 일평생 사는 동안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 쏟아 사랑할 대상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멋진 인생살이는 목표를 향해 행동하는 삶이어야 합니다(6-9절).
저는 매일 아침 일흔이 훌쩍 넘은 두 누이로부터 성경 구절을 메일로 받습니다. 그리고 묵상식구 한 분도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 한 구절을 선물하십니다. 그런데 크게 감동을 받거나 진한 느낌을 갖지 못합니다. 그들의 삶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모태 신앙으로 자라왔지만 입술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필요할 때 사랑한다는 말은 할 줄 알지만, 그 말이 진정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달랐습니다. 입 안에만 머무는 사랑이 아니라, 몸과 행동으로 움직이는 사랑, 실천적인 사랑을 힘쓰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세계 어디를 가든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곤 합니다. 그리고 매주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잘하는 일과 잘못하는 일을 시시비비해 주는 어른을 세웁니다. 이른바 회당과 산헤드린 의회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인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인생에서 힘쓸 두 가지 일입니다(1-3절).
어느 가장을 방문하고 그 집 거실에 걸려있는 <경천애인>이라는 글귀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 그리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는 일, 이 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삶은 없습니다. 제가 오래 전부터 강조하는 <좋은 생각 통장 갖기>는 모든 사람들이 힘써야 할 일입니다. 유대인의 전통 중에 <고르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레 1:2, 민 7:12-19). 불시/不時에라도 하나님께 바칠 감사의 예물단지를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는 가끔 착한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가난한 소년소녀 가장들의 얘기나, 전쟁 중에 고통당하는 난민들의 얘기며, 국경 없는 의사들이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안타까워하는 얘기에 돕고 싶을 때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물질이 없어서 뒤로 영영 미룰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슬픈 일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고르반>을 준비해 두자는 말입니다. 힘든 이웃을 돕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마 10:40-42).
3. 오늘은 주성농인교회(묵상식구 우슬초목사님 시무)에서 설교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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