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문 일이긴 하지만 설교를 모니터링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날은 설교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온통 비판적인 마음으로 설교를 경청해야 하는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 깨달음 중의 하나가 초점이 없는 설교의 문제점입니다.
흔히 강해설교에서 받는 큰 충격 하나는 한 편의 설교에 초점이 없다는 점입니다.
단어 하나 하나에, 그리고 문장을 구성하는 문법에 치중하다 보니까,
많은 주제들이 등장하게 되고, 하나의 초점을 찾을 수 없게 되고
마침내 머리속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그래서인지 설교자는 설교 말미에 바르게 살자거나
모든 종교인이 무난하게 사용하는 권선징악 정도로 얼버부리고 마는 경우가 됩니다.
저는 1996년 봄부터 2015년 2월말까지 20년간 어린이 설교를 했습니다.
어른을 따라 나온 어린이들 역시 예배자로 참석했기에
그들에게도 설교를 들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른 설교 앞 두번째 순서에 어린이 설교 시간을 넣은 것입니다.
물론 그 주일의 설교 주제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5-7분의 설교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제가 내린 결론은 어린이 설교가 어른 설교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결론입니다.
적어도 그 주일의 설교에서 무엇이 강조될 것인가를 소개했거나 암시했다고 말입니다.
"나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고 합시다.
먼저 저는 제목을 두번 정도 따라서 말하게 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다섯살 된 여자 아이에게 "너의 친구는 누구야?" 라고.
또 다른 네살짜리 남자 아이에게도, 그리고 열살 짜리 여자 아이에게도.
그리고는 "그랬구나. 좋은 친구들을 가져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라고 칭찬합니다.
그리곤 친구와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가지는 것이 훌륭한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오래 사귀는 친구와 그렇지 못하고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얘기합니다.
오래 사귀려면 힘든 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내 생각이나 내 기분과 다를 때인데, 그 때는 먼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화를 내거나 "싫어!"라고 말하기 전에, "기다려!" 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기다려!" 라는 말을 마음 속에 들려주는 분은 예수님이야. 라고 전합니다.
"싫어!"라고 말하기 전에 무슨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기다려!" 그래요. 여러분이 그런 마음을 가질 때, 좋은 이웃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예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설교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에게는 이웃을 대하는 마음 하나는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찬송을 부른 후 이어지는 어른들의 설교에서는 이웃에 대한 마음 가짐을 확보하게 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설교는 귀로 듣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그 주제나 중심점이 단순하고 명료해야 합니다.
이것 저것 여러 주제를 뒤섞어서 비빔밥을 만들면, 무엇을 들었는지 어리벙벙하게 되고 맙니다.
바로 이런 약점 때문에 설교 후에 우리의 정신과 생활에 변화를 기대할 수가 없었는지 모릅니다.
좋은 얘기를 늘 듣긴 듣는데, 구체성도 없고, 실천을 위한 동기부여도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에게 들려주는 얘기처럼 한번 되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내 아이가 알아듣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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