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주장을 펴고 싶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듣는 사람이 누구든 자신에게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기회가 주어진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설교라는 말에 가장 가까운 성서 언어가 선포라는 의미를 가진 케류그마라는 말입니다. 

동사는 케뤼소입니다. 물론 선포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그래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청중들의 호 불호를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선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를 일컬어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대사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설교를 들어보면 가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유명 목사님이란 분들의 설교를 여러 차례 모니터링 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자기 말 혹은 자기 주장을 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첫째는 성경이 말씀하는 주제와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가령 대림절 둘째 주일의 복음서 본문 눅 3:1-6을 설교한 어느 목사님은 

당신의 광야는 어디인가? 라는 주제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광야에 초점을 두었는데, 

본문에서 광야는 본문에 나오는 한 개의 단어에 불과할 뿐 전체를 말하는 주제는 아니었습니다.


둘째는 처음부터 본문의 요점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 일입니다.

설교자의 고민은 성경 본문이 말씀하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요약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오늘의 청중에게 그 요점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합니다.

문제는 처음부터 본문의 요점을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소리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에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설교자를 흔히 하나님의 말씀의 종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주인이신 하나님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최대한 힘써야 합니다. 

만일 주인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보낸다면 어떤 결과를 낳을 지는 뻔합니다. 


설교자가 말씀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물러야 하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깨닫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제게 들려주십시요.


만일 이런 유혹에서 벗어난다면, 

청중을 설득하는데서 조금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예 자기 얘기를 하려거나 딴지를 부린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종이 아닌 때문입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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