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3968호(2012. 3. 28. 수요일).
시편 137:4-6.
찬송 28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2. 오늘 본문은 이혼과 (2-12절), 어린 아이에 관한(13-16절) 예수님의 분명한 생각을 듣게 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저는 전자에 관해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제가 1983년 샌프란치스코 신학대학원에서 한 달간 서머스쿨을 하고 있을 때, 주일이면 교파가 다른 몇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일이 있었는데, 그 때 깜짝 놀란 것은 이혼을 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한 여자 목사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바로 거의 같은 시기에 저의 자매 교단의 미국 신학교 구약 교수가 된 지인이 이혼을 했다는 이유로 교수직에서 쫓겨난 것과 너무 대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변에는 이혼한 목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목회를 잘 하고(?) 있습니다. 이혼한 학교 선생님에게 무얼 배울 게 있겠느냐는 판에, 이혼한 목사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저 같은 사람 역시 오직 현상(現狀)만 볼 뿐, 그 내면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목사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음). 평생 웬수와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진 않더라도, 살갑게 다정다감하게 살지도 살려고 힘쓰지도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하는 말입니다. 요즘 드라마가 그런 문제들을 잘 반영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혼에 대해서 단호한 견해를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잘 쓰는 말 “천생배필” 론을 가지신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혼외정사나 간음행위를 엄벌로 다스리고 있습니다(레 20:10-16). 그것은 부부 상호간에 신뢰를 깨트리는 악한 행위라고 규정했고, 그 규정이 정교일치의 시대에 나왔음을 감안하면 그럴만한 일입니다. 이혼하고 싶은 여러 가지 사유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더 힘쓰고 더 노력해 보라고 하십니다. 벽에 부딪히듯 막막한 순간이 어찌 결혼생활 뿐이겠습니까? 그 때마다 관계를 해체하거나 새로운 출발을 감행하는 것은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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