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3966(2012. 3. 26. 월요일).

시편 136:21-26.

찬송 52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유명 패션잡지의 에디터 김지수씨가 쓴 <, 나의 가난한 사치> 라는 책이 있습니다. 직장인이라면 특히 어느 정도 년차가 있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런 일화가 나옵니다. “내가 상처를 받을 때는 야식 먹는 시간이나 아침 회의 시간에 늦게 온 내게, 후배들이 선뜻 의자를 양보하지 않을 때다. 반대로 예뻐 죽겠는 후배는 가장 먼저 의자를 양보하거나, 재빨리 의자를 가져다주는 후배다. 내 몫의 의자가 없을 때, 나는 공황상태에 빠진다. 서 있는 사람을 보고 의자 하나 마련하는 그런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을 볼 땐 치가 떨린다.” 정말 그렇지요. 자기는 편하게 의자에 앉은 채로 서 있는 사람을 쳐다만 보는 사람. 여기에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어디 좀 앉으세요.” 라고 입만 움직이는 사람을 보면 그야말로 땅 바닥으로 꺼지는 기분입니다. 그것도 후배가 그런다면요. 그렇게 서운하고 화가 나다가 잠시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니지요.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시대에 의자하나 쯤 양보하지 않는다고, 그 사람하고 무슨 철천지원수라도 될까요? 그런데요. 다시 생각해 봐도 서 있는 나에게 의자하나 마련해 주지 않는 사람하고는, 그다지 발전적인 관계가 될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사는 게 별거냐고요.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라고, 시인의 어머니가 말씀하셨더랍니다. 이정록 시인의 <의자> 라는 시가 있어요. 잠시 들려 드릴 게요.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 애 니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니었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꽈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 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다가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사는 게 별거냐? 이렇게 말해 버리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아귀다툼을 한 순간에 무위로 돌려놓고 마는 그 말 앞에서요. 그러면서도 묘하면서도 평화가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평화란 욕망의 쉼이기 때문이겠지요. 사는 게 별 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라고 합니다. 내가 내 놓은 의자에 인생이라는 전쟁터에서 앉을 데 하나 없어서 지치고 피곤했던 사람들이 쉬어갑니다. 그리고 평화는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에게로 찾아옵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속엣 말이 나올 지도요. “그래, 사는 게 별거냐?”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229일 방송>

 

2. 오늘 본문은 전혀 다른 세 가지 일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사람들에게 잡혀서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예고에 대한 제자들의 낯설어하고 두려워하는 분위기를 전하는 일화와(30-32), 제자들이 서로 잘났다고 다투는 모습을 보시고 오르려말고 내려가라고 충고하신 일화를(33-37), 그리고 적과 친구를 구별하는 방법을 가르치신 일화가(38-41) 그 내용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세 번째 적과 친구를 구별하는 방법을 가르치신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다원화 시대라고 합니다. 서로 다른 여러 사람들이 뒤섞여서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는 삶이 필요해졌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가령 부부라는 기초가 되는 관계도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함께 살게 된 것입니다. 모습은 물론, 성격도 취미도 관심사도 지향하는 삶의 의미나 목표도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루가 아니라 평생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을까 짐작이 될 것입니다. 그 결과 많이 충돌을 겪게 되고, 얻은 것은 너무 다른 사람이 만났다는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부부는 전생의 웬수사이였나 보다.” 라는 말입니다. 부부가 이렇다면 친구나 동료 그리고 교우들의 사이 또한 전혀 다르지 않은 게 우리 현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뭔가 하는 일이 같거나,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거나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받는 사이라면, 적이 아니라 친구라고 말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이제 부부 관계를, 친구 관계를 그리고 이웃관계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같은 기독교인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다르게 신앙한다는 이유로 적으로 생각하는 우리 한국 기독교회의 현상이 눈에 보이시는지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사도들의 신앙을 고백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리 헐뜯고 미워하고 싸우는지 말입니다. 교파만 달라도, 심지어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 이외에는 다 이단으로 매도하니 말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 다른 신앙 태도, 다른 이해를 수용할 너른 마음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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