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064(2012. 7. 2. 월요일).

시편 17:1-3.

찬송 21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옷차림이 크게 달라지는 계절이 되면, 옷장 안을 보면서 또 생각하게 됩니다. 왜 입을 옷이 하나도 없을까? 지난 해 이맘때에는 뭘 입고 지냈을까? 그러면서 옷장 안에 아무리 옷들이 잔뜩 걸려 있어도, 당장 옷을 사야할 것 같은 충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충동을 자주 느끼는 사람은, 대개 정말로 입을 옷이 없거나 가진 옷 자체가 적기 보다는, 옷을 잘 못 입는 사람일 거라고 합니다. 패션 에디터인 신정희 씨에 의하면, 옷을 입는 데도 초급 중급 고급의 삼 단계 등급이 있다고 합니다. 초급의 경우, 정해진 옷 입기 법칙을 잘 따르면서 입는 단계입니다. 남성의 경우에는 벨트 색깔과 구두의 색깔을 맞출 줄 아는 것. 여성의 경우에는 작은 키에는 무늬가 큰 옷을 피할 것, 이런 식으로 색깔과 체형등 기본적인 사항들을 고려하면서 입는 것이 초금 단계의 옷 입기지요. 다음 단계인 중급으로 들어서면, 파괴와 변칙의 개성을 발휘할 줄 아는 옷차림을 위해서 애쓰게 됩니다. 옷 입기의 절대 법칙처럼 여겨지는 초급 단계의 법칙들을 오히려 깨트리는 것이지요. 양복에 운동화를 신과 멋을 낸다던지, 수영복에 진주 목걸이를 하는 식의 파격을 감행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가장 높은 단계인 고급스러운 옷 입기는 어떤 옷차림일까요? 그건 바로 뭔가를 더 많이 걸치고 치장하는 더하기의 옷차림이 아니라, 오히려 치장을 줄이고 더 간소화하는 빼기의 옷차림을 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세계적인 모델이 외출하기 전, 거울을 보면서 무엇을 더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뺄까를 고민한다고 했듯, 유명한 스타일리스트가 늘 헐렁한 화이트 셔츠에 검은 바지차림을 하듯, 지극히 단순하고 오히려 뭔가가 부족한 듯한 옷차림으로 최고의 세련미를 보여주는 단계인 겁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57일 방송>a.

 

2.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어설픈 목사들이 자주 하는 질문 중의 하나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의 질문과 같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주님은 산 아래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십니다. 그들 중에는 병자를 데려온 부모도 있었는데, 요즘도 고칠 수 없다는 간질병 환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꾸짖자 귀신이 물러가고 병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난치병들을 귀신에 붙들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똑 같은 집에서 똑 같은 생활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암에 걸리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멀쩡하니 말입니다. 식습관이 같은데도 사람의 체질에 따라서 다르다는 얘기도 맞는 말입니다. 이렇듯 사람을 슬픔과 불행으로 끌고 가는 것은, 혹은 끌려가는 것은 귀신 말고는 달리 설명할 것이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데, 제자들은 할 수 없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겨자씨만큼 만한 믿음만 있으면 엄청난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금 믿음을 생각합니다. 믿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믿음은 우리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조금 더 분명히 말하자면, 주님께서 주님의 뜻대로 하실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믿음은 다른 믿음임에 틀림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려는 믿음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제자들도 그랬던 것입니다. 그들 역시 주님과는 상관없이 병 고치는 그 자체에만 관심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주님께 전 관심을 집중할 때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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