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10호(2012. 8. 17. 금요일).
시편 26:5-7.
찬송 42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공자가 길을 가다가, 두 아이가 티격태격 입씨름을 하는 걸 봤습니다. 태양의 거리에 관한 내용이었지요. 1번 아이가 주장합니다. 해는 처음 떠오를 때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고, 정오가 되면 가장 멀어진다고요. 처음 떠오를 때는 둥근 수레바퀴처럼 크게 보이다가, 정오가 되면 밥공기처럼 작게 보이니, 아침에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고, 정오가 되면 가장 멀리 멀어진다는 겁니다. 그러자 2번 아이는 그 반대라고 합니다. 아침에 해가 뜰 때는 서늘하고 차가운 느낌인데, 정오가 되면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근 거처럼 더우니 해가 훨씬 가깝게 왔다는 뜻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지구가 비스듬히 기운 채 태양 주위를 타원형으로 공전할 때는 태양과의 거리가 달라집니다. 북반구 우리나라의 경우 추운 1월에는 좀 더 가까워지고, 더운 7월에는 좀 더 멀어집니다. 가볍게 생각하기에는 태양과 가까워지는 때가 더 더운 7월일 것 같고, 1월에는 태양과의 거리가 멀어져서 더 추운 게 아닐까 싶은데, 그 반대지요. 그러니 입씨름을 벌이던 두 아이 모두 틀린 셈입니다." 두 아이는 입씨름을 하다가 공자를 발견하고는, 얼른 그에게 어느 쪽이 옳은지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두 아이는 공자를 비웃으면서 말합니다. “누가 공자님더러 지혜가 많다고 하던가요?” 사실 엄밀히 따지면 그건 지혜의 문제는 아니지요. 지혜보다는 과학적 지식의 문제입니다. 그 과학적 지식에 의하면,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면서 공전도 하고, 제 자리에서 스스로 자전도 합니다. 그런데 제 자리에서 자전을 할 때는 지구와 태양의 거리는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하루 중에는 해가 뜨는 시간이나 지는 시간이나 태양과의 거리가 똑 같은 거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6월 12일 방송>a.
2. 우리 주님의 부활기사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에 무덤을 향하던 여인들은 큰 지진을 만납니다. 그리고 번개 같은 형상을 하고 눈부시게 흰 옷을 입은 천사가 굴려나온 돌 문 위에 앉아 있고,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들은 죽은 사람처럼 굳어 있습니다. 무서워하며 바라보는 여인들에게 천사는 “너희는 무서워 말라.”며 예수님이 누우셨던 무덤 자리를 보여주며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알리고, 갈릴리에서 만나 뵈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무서움과 기쁨이 섞인 마음으로 달음질 하는 여인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무서워 말라. 가서 네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인들의 두 기분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하나는 무서움이고 다른 하나는 기쁨입니다. 본문에서 여인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느끼는 현상이었습니다. 지진이 그렇고 무덤 문이 열린 것이 그러하며, 천사들이 나타나 부활의 첫 소식을 전해주는 말씀이 그 무서움의 정체들입니다. 지진과 같은 엄청난 지각변동을 무서움 없이 맞을 순 없을 것입니다. 가녀린 여인들로써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큰 돌문이 열린 것 또한 두려움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 이미 상하기 시작했을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전율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인들이 느끼는 두 번째 기분 기쁨은 어디에 근거하는 것일까요? 하나는 천사와의 조우입니다. 천사를 만나는 일은 요즘 사람들에게는 낯선 사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천사를 자주 만납니다. 험한 길을 가는 동안 위험의 고비고비를 잘 비켜가게 하는 천사를 매일 만납니다. 사람들을 대할 때 있는 그대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주는 천사를 매일 만납니다. 휴대폰의 기능을 가르쳐 주는 손자가 저의 천사입니다. 매실차를 즐겨 마신다는 말을 기억하고 제게 권하는 사람들이 저의 천사입니다. 이런 천사는 항상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주님과의 뜻밖의 만남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늘 의심을 안고 살지 않습니까? 가능할까? 불가능할까? 될까? 안 될까? 갈까? 말까? 이런 틈새를 지나는 우리들이 주님을 만나게 된다면, 그 보다 더 큰 기쁨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근심과 걱정, 불안과 두려움까지를 다 맡겨도 좋을 분, 저는 그 분이 저의 주님입니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있고, 푸념도, 원망도, 온갖 투정도 다 주저리주저리 말할 수 있는 분인 때문입니다. 그 주님을 오늘도 만나며 살아갑니다.
3. 오늘 저녁에는 양주시의 한 팬션에서 열린 청년회 연합 하기수련회에 참석하려고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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