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16호(2012. 8. 23. 목요일).
시편 28:1-5.
찬송 25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2. 성경을 읽을 때, 흥미를 더해주는 구절을 대할 때가 있습니다. 가령 오늘 본문에서는 나다나엘과의 대화 속에서,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노라.” 는 구절도 그런 종류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과일을 제공하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유대인들이라면 그가 누구이든지 무화과 열매를 따 먹기 위해서 무화과나무에 다가서서, 그 나무 위를 쳐다보며 열매를 찾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한 마디 때문에 나다나엘은 표정이 달라지면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사렛에서 무슨 위인이 날 수 있느냐고 큰소리치며 예수님을 직 간접으로 부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는 한 마디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그는 무엇을 했기에 이처럼 달라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나다나엘은 어떤 특별한 일이나 사건을 경험했음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자기 혼자만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주님께서 그 현장을 보고 계셨다는 말에 놀라서 이런 고백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나다나엘은 어떤 일을 했을까요? 일반 주석서들이 그 점에 대해서 함구(緘口)하고 있지만, 본문의 문맥으로 살필 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의 출현이면서도 동시에 이스라엘의 임금의 출현을 사모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무화과 나무였는가? 에 대해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지만, 나다나엘은 자신의 집 마당 한 귀퉁이에 있는 무화과나무가 그늘도 풍성하고 거기에 평상도 놓여 있어서, 자주 그곳에서 기도의 시간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진지하게 자신의 신앙과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일심으로 이 같은 주제를 놓고 기도했을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진심을 묶은 기도와 명상의 자리였으니, 주님의 말씀은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고도 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3. 오늘 수련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힘들어도 일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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