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68.

시편 38:19-22.

찬송 42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초보 등산객들이 자주 묻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더 가면 돼요?” 그럴 때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이렇지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십중팔구 거짓말입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그 지점은 도무지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인생이라는 산을 오를 때, 힘들어 지칠 때 그런 거짓말이라도 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힘이 날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금방 도착할 수 있어요.” 이 말이 정말 거짓말만은 아닌 까닭은요,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더 가면 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타협하고 말까 포기하고 말까 유혹이 든다는 건 역설적이게도 목표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도 됩니다. 정말로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금방 도착할 수 있어요. 어쩌면 이 여름도 그렇겠지요. 조금만 더 견디면 금방 지나갈 겁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726일 방송>

 

2. 천고마디의 계절이라 불리는 가을은 깊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 중에서도 인생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잘 살고 있는가? 에서부터, 인간은 과연 구원받을 수 있는가 등 사람마다 다양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써 하나님의 섭리를 진지하게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는 그런 단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하시는가?

심각한 문제를 종종 마주치는 그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고 계시는가? 하고 질문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도우실 수 있을까?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바로 이 장면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절망과 자포자기 외에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음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아들이 천사들보다도 못한 분으로 오실 뿐 아니라, 죄와 죽음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죽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그 동안의 인간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난한 자가 부자들 때문에 죽거나, 약한 자가 강한 자로 인해서 죽는 일은 있었지만, 그 반대인 경우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첫 장면이었습니다.

 

사람과 형제가 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더 좋은 세상, 더 높은 세상으로 올라가기를 희망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가 주목하게 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 한 복판으로 내려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아무 희망도 아무 기쁨도 아무 자랑스러움도 없는 이 세상에, 무엇 때문에 내려오신 것입니까? 거기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들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내세울 아무 것도 없는 초라한 존재들인데 말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세상에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그 초라한 인생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하는 점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며 섭리이십니다. 온 세상을 그 넓은 가슴으로 끌어안으시는 사랑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신비의 다른 세상을 향한 삶이 아니라, 세상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는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말입니다.

 

고난당하는 이들 속에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너무 흔해 빠진 고난을 설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철부지 어린 아이들이 죽음의 외줄타기를 할 때, 뜻 모를 질병에 붙들려서 절망할 때, 이런저런 장애를 안고 태어나 살아갈 때가 그렇습니다. 유대인처럼 질문하는 이들 앞에서도 그렇습니다. 도대체 누구의 죄 때문에 이런 고난이 세상 구석구석에 깔려 있는 것입니까? 그 설명은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잘 알고 계신다.” 고 말입니다. 그리고 고난 그 현장 한복판에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말입니다. 고난은 사랑할 수 없는 불청객입니다만,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이방인이기도 합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룰 때까지는 동행해야 할 이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들 곁에 계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고 말입니다. 루터는 고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없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지옥이라도 무방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고난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이 없는 행복이 문제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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