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244호(2012. 12. 29. 토요일).
시편 60:5-8.
찬송 20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온 마음을 다해 열심히 달리다가, 꿈에도 생각지 못한 돌 뿌리에 걸려서, 쿵 하고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가속도가 붙어서 넘어지면 더 아프기 마련이라, 엉엉 큰 울음이 터질 법도 한데, 그는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그냥 자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잠만 잤습니다. 울지도 않고 계속 잠만 잤습니다. 그러고도 그는 계속 자고 싶다고 했지요. 유난히 잠이 많은 사람은 정신 의학자들에게 분석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잠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하지요. “내가 외부 세계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는 상태. 즉 자기의 관심을 밖으로부터 안으로 끌어들인 상태. 외계에서 물러나서 외계의 자극에서 자기를 차단하는 것.” 세상으로부터 더 이상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을 때,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느끼고 싶지 않을 때,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처럼 따뜻하고 어둡고 아무런 자극도 없는 상태. 그들은 자신의 몸을 작은 짐 꾸러미처럼 둥글게 웅크려서 잠속으로 떠납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난 후에 잠만 많이 자는 사람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어요. 잠만 많이 자고 싶다는 건, 단순히 게으른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잠만 자고 싶게 만들고 있을까요? 이것은 영혼의 껍데기인 육체만 깨어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만찬가지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잠만 자고 싶게 만들까? 어쩌면 꿈길에서 돌아왔을 때, 막상 갈 길이 없을까봐 미리 겁먹어서 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어쩌면 어떤 존재를 아직도 기다리는 중일지도요. 내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깰 수 있는 도끼든, 새벽을 깨우는 한 가닥 섬광이든,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나의 감각을 깨우치는 발걸음이든. 나를 잠에서 깨어 줄 수 있는 그 무엇. 그래서 아무리 돌덩이 같은 사람이라도 자신을 도끼처럼, 섬광처럼 다정한 발걸음처럼 깨워주는 존재에게 이끌릴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라도 계속 잠만 자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9월 26일 방송>
2. 가끔 TV 설교를 들으면서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본문의 중심점과는 관계가 없는 매우 지엽적인 단어나 구절 하나에 집착해서 전체적인 본문을 뒤죽박죽을 만드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사람은 본문의 중심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름 중심점을 찾아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유대 지도자들 사이의 숱한 갈등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초막절 끝날 우리 주님은 큰 소리로 설교하셨는데,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는 생수에 대한 말씀들(사 12:3, 44:3, 58:11, 겔 47:1-12, 욜 3:18)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도 비슷한 생수 얘기가 있었는데, 모두 <배/κοιλια>라는 말이나, <생수/ύδωρ ζων>라는 용어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배로 표현된 용어 κοιλια는 육신의 몸을 가리키는 배가 아니라, 인격과 자아라는 또 다른 의미가 있고, 생수로 표현한 용어 υδωρ ζων은 신선한 물을 뜻하면서 동시에 사람의 인격에서 흘러나오는 성령을 비유하는 말씀인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믿는 사람은, 그 인격에서 성령이 샘물처럼 흘러나오는데, 그렇지 않으면 주님을 믿기는커녕 부딪힐 뿐이라는 뜻이 된다는 말입니다(37-39절). 물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구주(혹은 메시야)로 믿게 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한 일이지만, 아무나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은 신비한 일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인 때문입니다(엡 2:8). 그러니까 말씀을 듣는 사람들 중에도 믿는 자가 있고 믿지 않는 자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믿고 싶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믿음을 품고 사는 일,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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