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354호 (2013. 4. 18. 목요일).
시편 시 85:7-9.
찬송 37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온갖 노력이 꿈이 계획이 모두 헛되게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있습니다. 물거품이 돼 버렸다.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바로 물거품입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의 이야기가 가슴 아팠던 것도, 왕자의 사랑의 얻지 못한 인어공주가, 다른 것도 아닌 세상에! 물거품이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물거품이 된다는 건, 그냥 사라지는 거니까요. 사라진다는 건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는 거니까요. 그런데 물거품은 정말 흔적 없이 사라질까요? 바다의 거품은 표면에서 부서지면서 사라지는 순간, 거품 방울 속의 물질을 대기와 세상 속에 퍼트립니다. 부서지면서 적은 양이지만 방울 속에 물과 소금 또 해양 유기체의 일부가 공기 속으로 퍼지는데요. 낮은 풍속의 부드러운 산들바람에도, 해수면 100 제곱cm당 10그램의 물이 날마다 공기 속으로 유출됩니다. 지구의 70%가 바다라는 점을 감안하면, 바다 거품이 터지면서 공기 속으로 유입되는 물의 양이 결코 적은 것이 아니지요. 이렇게 거품을 통해서 바닷속의 물질은 지구 속에 재분배 됩니다. 소금이 대표적인 물질이지요. 거품 방울이 대기 속에 소금 입자를 퍼트리면 소금은 바람을 타고 대기 중으로 퍼지는데, 이 소금 입자들은 대기 중의 수증기를 응축시켜서 비와 구름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과학 칼럼리스트 이 소형은 실험실의 명화에서 미의 여신 비너스가 바다거품에서 태어났다는 신화 이야기도, 바로 이런 바다 거품 성질과 연관이 있다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바다 표면의 그저 하얗게 부서지는 허무한 것이 아니다. 바다 거품은 또한 유기물질도 운반한다. 어쩌면 바다 거품은 육지에 아직 생명이 있기 전, 거품 방울을 통해 생명이 자랄 수 있는 어떤 조건을 육지에 퍼트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생명 자체가 바다 속에서 거품 방울을 통해 육지로 나온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니 물거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노력이 꿈이 사랑이 실패할 수는 있지만, 허무하게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바다의 물거품을 통해서 육지에 생명이 자랄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 지는 것처럼, 새롭게 시작될 노력 꿈 사랑이 더 잘 자라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소금 같은 역할을 할지도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2월 28일 방송>
2. 제자 소명 혹은 제자의 길에 선뜻 나선 두 형제들의 일화입니다. 요즘 신학대학원 지망생들이 많이 줄어들었고, 또 고령화되어가는 추세입니다. 저희 교단 신학교만 해도 30대 학생은 찾을 수 없고, 40대 5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소개받은 한 신학원생은 68세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자신의 전 생애를 주님의 제자로 살겠다고 결심하기에는 뭔가가 손해된다고 생각하는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본문은 다시금 제자의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시몬의 형제와 야고보의 형제는 같은 마을 친구들로, 직업이 어부였습니다. 그들의 나이는 가정을 꾸렸던 것으로 보아서 20대 후반이거나 아니면 30대를 훨씬 넘긴 중년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런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느 날 운명처럼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왔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재미있게 설교도 하시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신다는 말씀도 들어 왔을 것입니다. 그런 분이 자신들의 배를 좀 빌리자고 하십니다. 설교를 들으러 모여온 사람들이 많아서, 해변에 사람들을 앉게 하시고, 배를 타시고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를 마치신 주님께서 선주(船主)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시몬은 솔직한 사람입니다. 밤새도록 수도 없이 그물을 내렸지만 얻은 게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다고 하고 그물을 던졌는데, 너무 많이 잡혀서 야고보의 배까지 다 채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적 체험이 제자의 길을 택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시몬이나 야고보는 급한 성격상 그렇게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려 깊은 요한과 안드레까지 제자 소명에 쉽게 응했다고 하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가족과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 길, 그 험한 길을 그리 쉽게 던져버릴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묻습니다. 세습이나 연봉에 연연한 목회의 길을 걷고 있는가?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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