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352호 (2013. 4. 16. 화요일).
시편 시 85:1-2.
찬송 9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아침마다 옷장 앞에서 망설이게 됩니다. 겨울 코트를 입을까? 봄 재킷을 입을까? 마음이야 무겁고 두꺼운 무엇보다 너무 겨울 코트 대신에 가볍고 화사한 봄 재킷을 입고 싶지만요, 섣부른 선택은 감기를 자초할 수 있지요. 이 모든 것이 꽃샘 대문입니다. 예쁜 이름에 속으면 곤란해요.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 이런 무시무시한 속담까지 있으니까요. 어쩌다가 거를 법도 한데 “꽃샘추위는 꾸어다가 한다.” 할 정도로 꽃이 필 무렵에 꽃샘이, 잎이 풀 무렵에는 잎샘이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특히나 춘분 즈음의 꽃샘은 겨울 못지않고 매섭고 차기로 유명하지요. 그도 그럴 것이 꽃샘바람의 실체는 소솔이 바람입니다. 소솔이가 본래 회오리를 뜻하는 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요, 어떤 시인이 성깔 남은 바람이라고 했던 시구가 절묘합니다. 같은 현상을 두고 중국에서는 춘한 몸 추위라고 하고요. 일본에서는 하나비에 꽃 추위라고 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추위라는 말은 쏙 빼놓고 꽃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어디선가 금방이라고 꽃망울이라도 터트릴 것 같은 따스한 바람에 입김이 느껴집니다. 꽃샘, 꽃이 피는 걸 시샘하다. 도대체 누가 시샘한다는 걸까 싶었는데요. 풍신 바람의 신이 샘이 나서 꽃이 피지 못하게 차가운 바람을 불고 있다고 합니다. 한 겨울 내내 자기 세상처럼 실컷 불어대고도, 욕심이 남았는지, 깨끗하게 물러나지 못하고 공연히 샘을 내는 풍신의 심보가 참 고약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갖지 못해서 혹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갖고 싶어서, 남이 잘 되는 걸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 내리는 마음이, 어디 풍신에게만 있을까요? 헤르만 헤세는 그런 존재들을 늙은이에 비유하면서 <봄의 말>이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어느 소년 소녀들이나 알고 있다/ 봄이 말하는 것을/ 살아라 자라나라 피어나라 희망하고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 몸을 던져 삶을 두려워 말아라. 늙은이들은 모두 봄이 소곤거리는 것을 알아듣는다. 늙은이여 땅속에 묻혀라. 씩씩한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몸을 내 던지고 죽음을 겁내지 마라” 내 속의 무엇이 소년소녀이고, 또 무엇이 늙은이일까요? 무엇이 삶을 두려워 말아야 하고, 또 무엇이 죽음을 겁내지 말아야 할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3월 18일 방송>
2. 어느 안식일에 가버나움 동네에서 하신 설교와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신 일화를 본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권세 혹은 권위가 있었다는 말을 두 번씩이나 하고 있습니다. 설교에서도, 그리고 귀신을 내쫓는 일에서도 권세가 있었다고 말입니다. 이렇듯 권세 있음을 인정한 것은 말씀이 빈말이 아니라, 삶을 흔드는 힘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권위 있음이란 말씀 한 마디로 그 난폭하고 미처 날뛰던 사람이 제정신을 차리고 온순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 우리 시대에도 이 권세라는 말, 혹은 권위라는 말이 진지하게 회자(膾炙)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부모의 권위가 선생의 권위가, 지도자의 권위가 떨어져 버렸다고 걱정들입니다. 그래서 그런 권위를 되찾겠다고 이런 저런 방도를 찾고 있습니다. 도대체 권세 혹은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며, 무엇을 두고 권세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제5공화국이 사회정화 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깡패들을 재훈련시키겠다고 삼청대로 불러들이고, 교회와 성당 등 종교계의 설교마저 녹취해서 보고하도록 하는 지침이 내렸습니다. 국가권력을 탈취한 불법 군인들이 저지른 행패였습니다. 그 때 개신교 대표들을 불러놓은 회의장은 집총을 한 군인들이 도열한 사이로 입장하도록, 위압감을 주면서 말입니다. 억지 권위 앞에서 쫄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회초리나 반말로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 권세는 죽는 몸에서가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에서 나오는 때문입니다. 참 권위는 말과 행위의 일체성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권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볼썽사나운 권세가 불거져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3. 오장육부를 흔드는 기침이 멎지 않아서 병원엘 갔는데, 몸살이라고 합니다. 미련을 떨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께는 물론 제게도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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