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380호 (2013. 5. 14. 화요일).
시편 시 90:1-4.
찬송 50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근육질 할아버지는 앞의 할아버지와 정반대입니다. 그분은 키도 체격도 유달리 크고 비대하셨지요. 술도 자주 많이 드셨습니다. 그러다 그 분 역시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입원을 하셨습니다. 한 3개월가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아내와 딸이 늘 옆에서 돌보아주었는데요, 두 사람이 고생하는 게 너무 애처로웠습니다. 당신 몸 아픈 것보다도 더 안쓰러웠지요. 특히 아내와 딸은 둘 다 키도 체격도 아주 작은 편입니다. 자신들의 두 배쯤 되는 환자를 일으키고 눕히고 부축하는 게 얼마나 힘들지, 그동안 자신의 몸무게며 건강을 전혀 돌보지 않은 게 정말로 미안하고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퇴원하는 즉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 당신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가족을 위해서지요. 다시 또 할머니와 딸을 병간호하지 않게 하려고, 행여 또 아파 눕더라도 두 사람이 좀 덜 힘들게 하려고 몸무게부터 무조건 크게 줄일 생각이었지요. 그런 생각으로 엄청나게 운동을 하다 보니, 어느 덧 그곳에서 가장 건강한 근육질 할아버지가 된 겁니다. 같은 운동의 정반대의 이유가. 가족이라는 동일한 관계의 거리차이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 가족은 정말 사랑 없이는 행복할 수 없는 관계라는 걸 새삼 되돌아보게 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3년 2월 22일 방송>b.
2. <칠십 제자의 파송> 이라고 제목을 붙인 말씀을 읽었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목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 가운데 “성경적” 이라는 관용어가 있습니다. 그런 용어를 사용하는 까닭은 그 보다 더 권위 있고 설득력이 있는 말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런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은 70인을 세우시고 그들을 파송하시면서 몇 가지를 당부하십니다. 그 중에 문제가 되는 구절이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 지어다 하라.”(4-5절)입니다. 그런데 2천 년 전에 하셨던 이 말씀을 지금도 문자 그대로 사용하면서, 이를 성경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어떤 선교 단체에서는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지키라고 강조하는데, 그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도 심심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주석서들은 복음 전파의 시급성 때문에 이런저런 것들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사정을 말씀하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모든 말씀에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수행할 방법 등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천편일률적으로 문자 그대로 마치 변할 수 없는 공식처럼 사용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 여름까지 합하면 서른세 번의 선교지 경험을 한 저는 성경적(?)이지 않게 매번 전대를 준비합니다. 선교지의 열악한 교회 지도자들은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먼 곳에서 찾아와야 합니다. 오토바이 등으로 하루 이틀을 와야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 역시 전혀 자립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 제대로 가르치고 지도할 능력이 없는 오직 열정 하나만 가진 이들에게, 오토바이 기름도 당신 돈으로 넣고, 숙식도 당신 힘으로 하면서, 와서 공부하라고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분명한 선교 목표를 문서화하는데, 재정계획도 반드시 세웁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신학교육을 수행하는 데는, 수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을 격려하는 계획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적이라는 말을 우선 목적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괜히 전대도 없이 떠난 이들이, 누군가에게 얻은 정보로 엉뚱한 이들을 찾아가 힘겹게 만드는 사례를 더 이상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바로 성경적이 아닌 때문입니다. 차제에 제가 가장 화나는 것은, 성경구절을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이해나 해석 없이 함부로 대입시키는 설교입니다. 그러니까 성경구절을 많이 인용하는 설교입니다. 모든 말씀은 각기 다른 배경과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마구잡이로 대입시켜서는 안 되며, 그게 바로 성경을 문자주의화 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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