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508호 (2013. 9. 19. 목요일).
시편 시 119:37-40.
찬송 50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텔레비전을 봐도 라디오를 들어도, 온통 추석이야기입니다. 시장에 가도 옆집에 가도, 추석이야기가 나옵니다. 양 어깨가 축 쳐져서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전화기를 쳐다봅니다. 전화가 고장일 리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괜히 수화기를 들었다가 신호음을 듣고 깊은 한숨과 함께 내려놓습니다. 이런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는 더 속상합니다. 속상해서 화를 냅니다. 몇 년째 전화 한 통 없는 녀석이 올 추석이라고 다르겠느냐고, 괜한데 힘 빼지 말라고 냅다 소리를 지르곤 휑하니 나가버립니다. 어머니는 아들 형편이 오죽하면 부모에게 전화 한통 못할까, 그동안 소식이 없었으니 올해라도 오지 않겠느냐는 마음입니다. 전화벨 울리는 소리와 대문 여닫는 소리에 온통 마음이 쏟아집니다. 멀리서 자가용이 달려와서 서고 왁자지껄하게 서로를 반기는 소리가 들립니다. 옆집 아들네가 도착한 모양입니다. 그 집 아낙은 얼마 전 아들이 아파트 평수 넓혀서 이사 갔다고 실컷 자랑하고 돌아갔습니다. 자네 모셔가겠단 말은 안 하더냐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못단 아들 둔 열등감으로 오해받을까봐, 입을 그냥 다물었습니다.
고향이 모든 사람에게 세상에 둘도 없이 편한 곳만은 아닙니다. 보리스 파일러의 책 [아빠가 선물 한 여섯 아빠]에는 다른 고향에 대한 이런 명언이 나옵니다. “그곳은 우리가 자란 곳이야. 냄새나고 지저분한, 가지 말았어야 할 장소지.” 그래서 때로는 가지 않을 수만 있다면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새로운 진실을 깨닫곤 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우리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웠어. 거긴 우리의 고향이야.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괜히 지금 세상에서 가장 심오한 진리중 하나를 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요. 누군가 고향을 어머니에 비유한다면, 어떤 의미에선 꽤 적절한 표현입니다. 세상에 어머니를 좋다 싫다로 평가 하는 자식 없듯, 고향 또한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존재, 그 자체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9월 17일 방송>
2. 사도는 육신에 속한 자, 어린 아이와 같은 이들에게 말하겠다면서, 고린도 교인들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시기와 분쟁으로 키 재기를 하는 일들이며(3:1-4), 파당을 조성하는 어리석은 일들(5-9절), 그리고 헛된 공적을 쌓아 구원에 이르려는 어리석음들(10-15절)이 그것들입니다. 그러면서 그 해답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일이라고 합니다(2:14-16). 어떻습니까? 아무리 영적인 사람으로 살려고 해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려고 기를 써도, 여전히 육적인 욕망은 시도 때도 없이 불거져 나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사도 자신도 그런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고 말입니다. 육신을 가지고 사는 동안은 피할 수 없는 질곡에 빠져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로써 받을 비난을 피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말입니다.
사도처럼 당당하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2:16b) 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진지하게 고민할 말씀입니다. 나는 과연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과연 그리스의 마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암시하는 말들은 여러 곳에서 포착됩니다. 젖이 아니라 밥을 먹는 일(3:2)이고,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일이며(3:6-7),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우는 것이라고 말입니다(3:11). 그러니까 부드럽고 달콤한 젖과 같은 말씀만이 아니라, 쓰고 짜고 맵고 거친 식사 같이, 듣기 싫고 벅차며 고통스러운 말씀까지도 꾸역꾸역 잘 참고 들어야 하는 일이라든지, 모든 귀하고 값진 성취를 자신이 아닌 그리스도께로 돌리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마치 안디옥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앞세움으로 크리스천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모든 일련의 일들이 우리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고 말입니다.
3. 아이들과 추석 아침을 먹은 후, 오전 9-12시 도봉산 정상 만장봉을 오르려고 합니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으니까 즐거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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