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512(2013. 9. 23. 월요일).

시편 시 119:54-56.

찬송 50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문이 닫혔습니다.”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고 닫힐 때면, 늘 안내 음성이 들립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 그 안내내용이 바뀌었습니다. 건전지가 다 됐으니 교체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침 신문을 가지려갔던 신랑이 즉시 건전지를 가져다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침 미리 사둔 건전지가 없었습니다. 늘 행동이 빠른 신랑은 자신이 당장 집 앞 편의점에 다녀오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굳이 말렸습니다. 출근 직전에 건전지 사러갔다 오려는 신랑이 수고스럽거나 고마워서 만은 아닙니다. 자신이 낮에 할인점에 가서 한꺼번에 사면 더 저렴할 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낮 시간은 어디도 다녀올 시간이 없었지요. 저녁에 있을 친구 전시회의 오프닝을 도울 준비로, 집에서도 다른 날보다 훨씬 더 바빴습니다. 저녁 무렵 집을 나설 때 현관문에서는 다시금 안내 음성이 들렸습니다. “건전지가 다 됐으니 교체해 주십시오.” 조금 불안하긴 했습니다. 혹시 이젠 문이 안 열리는 게 아닐까? 하지만 경고를 그렇게 짧은 동안만 하지는 않겠지, 설마 한번쯤은 하루쯤은 더 가겠지 하면서, 바삐 승강기에 올랐습니다. 그리곤 그 일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오직 친구 전시회에서 해 주기로 한 일들과 그 역할에만 온통 마음을 쏟았지요. 전시회는 생각보다 훨씬 성황이었습니다. 전시회의 주인공인 친구도 그 전시회의 중요한 부분을 도맡아 진행해준 자신도 기분이 고무될 만큼 성황이었습니다. 전시회 후의 식사 자리도 즐겁고 신났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371일 방송>a.

 

2. 뭔가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하고 돌아볼 때면, 언제나 후회 막급인 것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잘못 살았다는 자책만이 온 생각을 채우는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의 심정이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사도의 눈에 비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한마디로 교만과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가르친 내용과는 너무 다르게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 개신교회를 볼 때 그런 느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한 치과에 몽골지도자를 모시고 갔었는데, 말할 수 없는 곤욕을 치렀습니다. 한국 개신교회의 목사들이 가르친 것은 복음이 아니라, 부자 되는 것만 가르쳤다고 일갈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본받는 그런 삶을 사는 기독자가 아니라,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무방하다는 식의 기복인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겸손과 섬김 그리고 희생의 본을 보이신 주님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고, 제일주의 중앙주의 최고주의에 만취된 위인들로 교회를 채웠다고 말입니다.

   사도는 지금 엉뚱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을 바라보면서 큰 소리로 화를 냅니다.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하고 말입니다. 모든 문제의 중심에 그들은 왕노릇하려는 태도를 가졌다고 지적합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신 주님과는 정반대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만 가려는 그들의 현실이 사도를 분개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게 과연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일까? 놀랍게도 사도는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하면서, 그 모습을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된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역설적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좋을 듯합니다. 가장 약하고 비천하며,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定處)도 없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주 안에서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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