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39호.
시편 25:1-3.
찬송 42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고뭉치 반려동물의 뒷모습, 앞서 가는 아이의 뒷모습, 연로한 부모님의 뒷모습. 무심코 바라본 뒷모습에서, 눈을 마주하고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들려올 때가 있지요. 나태주 시인은 <뒷모습>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하더라고요.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시인은 스스로 볼 수 없는 뒷모습을 타인에게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이라고 말합니다. 문득 궁금해져요. 나의 뒷모습은 어떤 표정으로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있을지 말이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9년 6월 8일 방송>
2. 성령강림절 후 여섯째 주일의 구약성경은 창 18:1-10a.로 아브라함이 천사를 알아보고 극진히 대접함으로,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예언과, 소돔과 고모라 땅에 사는 조카 롯의 가정을 구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천사는 우리들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찾아와서 도움을 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문제는 천사를 천사로 알아보는 신앙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천사를 영접하는 첫걸음이었습니다(1-3절).
아브라함이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는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진 나이에, 더욱 사려깊은 자세로 자신의 주변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 적절한 일화가 낯선 나그네들을 극진하게 접대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일화는 모슬렘들에게는 가장 큰 실천덕목이 되었고, 베네딕투스(분도) 수도사들에게도 제일 덕목이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부산 분도수녀원에서 배운 것 하나는, 여행중일 때 노자가 떨어지면 분도수도원이나 수녀원을 찾아가면 재워주고 먹여주고 노자까지도 베푼다는 것이었습니다. 나그네는 세상에 내려온 천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하는 나그네의 처지를 이해하고 대접하는 것은, 천사를 천사로 알아보는 기본 모습일 것입니다. 김필승 목사님 내외는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의 한 수녀원 얘기를 전해 오셨습니다. 나그네는 쉽게 감동할 수 있는 처지입니다.
나그네를 편히 쉬게 하는 것이 천사를 공궤하는 것이었습니다(4-8절).
피곤한 여행 중에 발을 씻고 쉴 수 있다는 것과, 부드럽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기억에 남을 최상의 대접일 것입니다. 제가 장가를 가려고 천신만고 끝에 거창을 지나 해인사 입구 귀원이란 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둡고 눈은 온 세상을 덮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와 누이동생 그리고 목사님에게 저녁을 대접한 작은 교회를 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개척교회를 시작했을 때 처음 맞은 새해 아침, 어른 교인은 하나도 없고 학생들 밖에 없었는데, 설빔을 차려 입은 천사같은 아가씨가 세찬을 한 상 들고 찾아온 것입니다. 몇 달 후에 알게 되었는데, 우리 교회를 한 눈에 내려다 보는 아파트에 사는 한 침례교회 집사님께서 외로운 목사 가족을 위해 보내신 것입니다. 그때 받은 위로와 격려는 제가 오늘까지 목사로 살아가는 평생의 힘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예들은 세상 구석구석에서 지금도 제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천사를 대접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주목하고 계십니다(9-10절).
사르밧의 이름없는 한 과부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자신과 외아들이 먹을 마지막 식사를 제공하였습니다. 계산도 대책도 없는 무모한 감상적인 모습일 수 있었지만, 그 여인은 자신의 아들을 죽음에서 살리는 보상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천사를 대접하였을 때, 그는 꿈에나 그리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소돔과 고모라에서 조카 롯을 구해내는 1급 정보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제게 세찬을 공궤했던 집사님 가정에도 훌륭한 가정과 사돈을 맺는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이런 일화들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천사로 알아보고 대접하는 사람들을 주목하고 계신다는 반증입니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가장 어리석고 헛된 일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는 기적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변엔 돌봐야 할 천사들이 많고 많습니다.
3. 오늘은 좋은소식 시각장애인 교회에서 설교할 예정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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