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18호.
시편 19:12-14.
찬송 50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숨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 숨은 능력이 갑자기 발견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극심한 고통과 한계 상황을 거치면서, 비로소 잠들어 있던 잠재력이 밖으로 솟구쳐 오르게 됩니다. 숨은 능력을 찾아내는 것은 인생의 재발견이고, 또 한편으로는 생의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19년 6월 19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셋째 주일로 구약 왕상 19:9a-21을 본문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 7,000인”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길고 캄캄한 터널과 같은 시련을 겪으면서 자신의 신앙이 성숙했노라고 얘기합니다. 위대한 인물들을 제대로 만나보려면 그들의 삶의 전환점이 되었던 특별한 사건들을 발견해야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 역시도 그런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그의 신앙을 한 계단 높이 올려주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절망의 순간이 찾아올 때 아주 분명해 지는 분이 있습니다(9a-10절).
모든 사람들의 삶에는 절망이라는 터널들이 가끔 혹은 자주 나타납니다. 그래서 낙담하고 슬퍼합니다. 그런데 그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기적도 많습니다. 그때 하늘의 별들을 자주 쳐다볼 수 있습니다. 당장 내일이 불안할 때를 겪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때 하나님을 향할 수 있은 것은 은총이었고 행운입니다. 그렇다고 기적이 당장 일어나지 않습니다. 든든한 배경이 생겼다는 것, 새로운 힘과 용기가 생겼다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는 의분이 일어났다 했습니다. 거짓과 불의에 맞서 싸우던 친구들은 다 죽임을 당하고, 이제 남은 한 사람 자신도 죽이려고 혈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큰 소리로 따져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마치 옆에 있는 듯 싸울 수 있는 대상이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을 만날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11-14절).
음주문화에 대해서 교회가 잘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속된 말로 간덩이가 부으면 저지르지 못할 말과 행동이 없습니다. 흥분을 잘 하는 정치가들이나 정치 목사들이 이런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끔찍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토하면서도 당연한 듯 자랑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성산 호렙산을 찾는 이유나, 고즈넉한 예배당을 찾는 중요한 이유가 예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함부로 지껄이지 않습니다. 세미한 소리가 들릴 때까지 마음을 가라앉힌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6개월간 입주 가정교사를 할 때, 정색을 하고 떠나가 달라는 학생의 제안을 받았을 때, 그를 물가로 데리고 가서 물에 발을 담그고 말없이 몇 시간을 보낸 후, 꺼낸 몇 마디가 그를 다시 공부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음의 격랑을 가라앉히고 나니까 들을 귀가 열린 것입니다. 거창 제일의 부자집 아들이 공부하게 된 경위입니다.
아직도 여전히 하나님만 섬기는 7천명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15-18절).
한 권의 책을 찾는데 보름이나 걸렸습니다. 그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눈이 있어도 여전히 더듬거리며 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덕분에 잊고 있던 많은 것을 깨우쳤습니다. 힘들고 지칠 땐 “왜 나 혼자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군인이던 시절 잘 불렀던 <해변의 길손> 마지막 가사는 “why, oh why must I go on like this? Shall I just be alonely stranger on the shore?” 라고 울부짖습니다. 왜 나 혼자만이냐고 악을 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래 전에 우리 주변에 7천명이나 되는 친구들을 두었던 것입니다.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외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세상은 악마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운행되고 있다는 진리입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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