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53호.
시편 28:3-5.
찬송 46, 235, 2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백지를 한 장 갖다 놓습니다. 그리고 그걸 반으로 접습니다. 한쪽에는 어려운 일을 적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다행이고 감사한 일을 적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번도 한쪽만 채워지는 적은 없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에 소개된 말입니다. 앞을 알 수 없어서 힘이 들 때 이런 방법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백지 한 장 반으로 접어서 좋은 일을 먼저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9년 1월 31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여덟째 주일로, 복음서의 말씀 눅 12:13-21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에게 물었습니다. "현대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토인비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현대인은 세상에 대해 지식이 있지만, 삶에 대한 지혜가 없습니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하지요." 삶에 대해 지혜가 없는 지식인은 어리석다는 말입니다.
귀한 것과 덜 귀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리석다 말씀하십니다(13-15절).
사람들은 만물의 영장이라 불릴 정도로 현명합니다. 그러나 최선과 차선, 귀함과 덜 귀함 같은 중요한 차이를 잘 구별하지 못해 어리석음에 빠지곤 합니다. 기미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했지만 일본 천황을 위해 우리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몬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초심을 잃어버린 사람 또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군사독재에 맞서다 감옥에 간 목사가 그 독재자를 찬양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한결같이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눈앞만 바라보고 곧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지 못한 것입니다. 유산싸움은 약간의 물질을 얻을수는 있어도, 피를 나눈 형제와 자매를 잃어버리게 되는 비극을 낳은 것입니다. 이런 현실주의자들은 친구도 잃고 마침내 인간성까지 다 잃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것과 찰나적인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어리석다 말씀하십니다(16-20절).
예수님이 들려주신 <한 부자 이야기>는 세상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큰 곳간을 짓고 곡식과 물건을 쌓아두는 일이었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말씀치 않으셨지만, 부자였기에 매우 쉬웠을 수 있습니다. 부자에게는 여력이 있으니까 모아두거나 사 두면 더 큰 부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세상에서의 부자와 천국에서의 부자를 구별치 못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움켜주기만 하면 부자로 행세하며 살 수 있지만, 천국에서는 정반대로 나눠줘야만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세상에서 부자로 살 때, 천국에서 살아갈 연습을 했어야 합니다. 움켜쥐는 것처럼 나눠주는 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부자가 깨닫지 못한 것은 세상살이가 천국살이의 예행연습장이란 진리였습니다.
어리석은 삶에서 하나님께 부요한 삶으로 돌아서는 것을 지혜롭다 말씀하십니다(21절).
누구나 처음부터 지혜롭게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철이 들어야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가고 경험이 축적되면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병들고 실패를 맛봐야 무엇이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고, 배고프고 억울한 시련을 겪어봐야 어떻게 사는 게 바른 삶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렇듯 인생 새옹지마를 겪게 될 때, 하나님의 섭리에 눈을 뜨게 되고 제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 찰나에서 영원으로 목표를 바꾸게 되고,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삶의 원칙을 세우게 됩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지혜를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 감화케 하시지 않으면 누구라도 얻을 수 없는 은총입니다. 우리를 자기중심적인 세상가치의 어리석음에서 하나님께 부요한 삶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이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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