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67호.
시편 31:9-11.
찬송 34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약속에 따라 기도하오니, 제게 금이나 은 대신 굳건하고 확고한 믿음을 주소서. 주의 약속에 따라 문을 두드리오니, 세상이 고귀하고 위대하다 여기는 것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겠사오니, 제 마음을 훤히 비추시는 주의 성령을 주시어, 불안하고 어려울 때 저를 강인하게 하시고 위로하여 주소서.” <루터의 기도>, 구영철 역, p. 161.
2. 성령강림절후 열째 주일의 사도서간의 말씀은 히 11:17-31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의 요체는 사람의 노력과 행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행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첫째 오해는 믿음의 대상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 오해는 기독교인들의 값싼 고백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그 믿음의 특징을 배우려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은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았다 말씀합니다(17-20절).
믿음을 말할 때는 주의를 해야 합니다. 믿음은 인격적인 관계에서만 사용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에 믿음의 대상이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00살에 얻은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사흘 길을 걸어갔고 행동에 옮기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아들이삭을 통해서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주시마 약속한바 있었습니다. 충분히 갈등이 일어날 수 있고 모순된 명령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격을 믿었습니다. 이사야의 말처럼 하나님의 생각은 자신의 생각보다 높고 깊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사 55:9-10).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고,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의지했다 말씀합니다(23-29절).
기독교의 믿음을 싸구려로 취급을 하거나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설교자들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한 목사님은 너무 좋은 나머지, 교우들이 쫓아내지 않는다면 그 교회를 위해 뼈를 묻겠다 약속을 했다 합니다. 그런데 몇 년 가지 않아서 다른 더 좋은 자리가 생기자, 왜 사람을 믿느냐며 그 교회를 사임해 버렸습니다. 지금도 무슨 말이든 “믿습니까?”라고 동의를 구하고, 앞뒤 분간없이 아멘하곤 합니다. 값싼 믿음이 우리 교회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자신의 전 재산과 생명을 다 맡기는 중요한 고백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기꾼에게 전 재산을 맡기고, 돌팔이 의사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기겠습니까? 모세와 그의 부모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손에 자신들의 자식을 믿고 맡겼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미래를 확신했다 말씀합니다(21-22, 30-31절).
믿음은 사는 것과 죽는 것을 가르는 인생 최대의 결단입니다. 그래서 섣불리 또는 함부로 믿는다 말해선 안 됩니다. 수천 수만 번이나 “믿습니다.”를 떼창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17일 그 교회의 목사가 25년간 9명의 성도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상고심에서 16년 징역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믿습니다.”를 떼창하던 13만 명의 교인들은 얼마나 허망할까요? 믿음의 사람들이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죽음 너머에 펼쳐질 하나님의 미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총리였던 요셉은 임종 시에 자녀들을 축복하고 해방의 날을 예언한 것이나, 여리고의 기생 라합, 사사 기드온, 삼손, 입다, 그리고 선지자 사무엘과 왕 다윗 등은,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보며 자신들의 말과 행동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생애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이었습니다.
3. 매월 셋째 주일은 좋은 소식 시각장애인 교회에서 설교를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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