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730호.
시편 41:5-9.
찬송 24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잎새들이 가랑비처럼 내리는 거리에서 가을 햇빛에 반짝이며 떨어지는 황금빛 잎새들을 보고 있으면 글쎄요. 사람도 떠날 때 저렇게 아름답게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뒷모습을 한번쯤 차분하게 돌아보는 그러한 계절이지요. 인생의 가을날과 겨울날에도 계절의 깊이가 느껴지는 넉넉함과 아름다움이 담겨 질 수 있다면, 우리의 삶도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6년 10월 29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후 열아홉째 주일의 사도서간문 딤후 3:14-4:5을 본문으로 “말씀을 묵상하며 증거하는 삶”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목사들이 자주 받게 되는 질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묵상하며, 자신들의 삶에서 그 말씀을 풀어내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경말씀에 대한 확실한 신앙고백이 필요해졌습니다(3:14-17).
기독인의 신앙 여부를 검증하는 첫 단계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이라 규정한 것은 최상의 은총이었습니다. 루터는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서만 존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양육되며”, “말씀을 듣는 것이 신앙에 선행(先行)한다.”고 강조했고, “말씀을 믿는 것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다.”고 했습니다. 21세기 기독교회의 최대 위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부실한 가르침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비로, 또는 정반대로 인간의 상상에 의한 작품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위험한 양극단입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기록된 말씀으로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정신을 널리 전파해야 합니다(4:1-2).
50년 전의 한국 교회는 성경 읽기와 성경 암송을 권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고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소위 이단이라는 사람들이 성경을 더욱 강조하는 이상(異常)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내 주요 장소에서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성경교육 홍보행사가 눈에 띄게 늘어났고, 이단으로 규정된 집회에서는 성경공부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 말씀으로 자신들의 이단성을 감출 뿐 아니라, 성경에 무지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도구로 삼은 것입니다. 신학교육도 재정비해야 합니다. 세상 학문과 어깨를 같이하려는 이론 중심의 신학보다는 성서 신학이 강조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성경만이 예수 그리스도가 참 구주인 것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왜곡하는 것은 성경을 희화화(戲畫化)할 때 입니다(3-5절).
요즘 시위 군중들을 향해서 성경 말씀을 왜곡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등장한 것은 매우 우려되는 일입니다. 개인으로써 정치에 참여하는 것과, 기독교 신앙을 앞세워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확실히 구별해야 합니다. 정치적 선동과 실정법을 어기는 거친 발언과 함께 성경구절을 남발하는 것, 그리고 타종교인에게 헌금을 강요하는 것과, 헌금이 저질 정치판을 후원하는데 쓰이는 것은 모두 비 성경적 해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도덕률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말씀인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역행하는 말과 행동은 기독교회 안에서 정화해야 할 과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코미디화 하는 것도 자체 정화가 필요한 과제입니다. 이런 현상은 신학적인 제재(制裁)와 구속력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속한 지도자들이라고 합니다.
3. 지난 금요일 도봉산 둘레길 산책에 나선 세 부부는(김필승 목사, 서주식 사관, 그리고 저)의 모처럼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평생 한 번 뿐인 올해 단풍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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