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773(2019. 12. 2. 월요일).

시편 51:10-13.

찬송 13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슴이 머리 몰래 하는 짓이 있습니다. 감정입니다. 감정이란 대부분 나도 몰래, 나의 육체를 짓누르며 솟아오르지요. 나 라는 제국 안에서 일어난 반역. 그래서 처음에는 좀 당혹스럽습니다. 계획에도 없던 일, 의도하지도 않았던 일이, 나 몰래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견고하게 보이는 성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 가슴이 머리 몰래 벌여놓은 감정에 사로잡히면, 이번에는 눈과 발이 동참합니다. 보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자꾸 몰래 보게 되고 가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자꾸 몰래 갑니다. 내 마음의 눈 내 마음의 발이 자꾸 그곳으로 향합니다. 분명히 나쁜 짓은 아닌데, 몰래 이러는 건 아직도 머리의 승낙을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남이 아는 것이 부끄럽고 자존심 상해서 일까요? 몰래 사랑하고, 몰래 울고, 몰래 아파하고, 몰래 미워하고, 몰래 꿈을 꾸고, 또 계획을 세우고, 몰래 한밤중에 아이스크림을 먹고, 쇼핑을 하고. 몰래 했고, 몰래 하는 것에는 이렇게 수수께끼가 숨어 있습니다. 왜 몰래할 수밖에 없는지? 또 무엇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지. 어쩌면 나의 진실과 비밀이 폭로 되려고 하는 순간일지도요.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누군가를 진실한 마음으로 알고 싶을 때, 가장 보고 싶은 모습이 바로 그 몰래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남이 모르게 살짝 가만히, 그 무엇인가를 하고 있을 때야말로, 아무도 의식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니까요. 그래서 몰래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몰래 훔쳐보고 싶어집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모습. 하지만 몰래는 홀로 입니다. 그래서 몰래하는 건 아무 것도 다른 사람과 나눌 수가 없습니다. 사랑도 슬픔도 아픔도 성공도, 심지어 아이스크림도요<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1129일 방송>

 

2. “예루살렘 입성(1-11)”을 읽었습니다. 유대 나라의 변방이던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 3년 가까이 활동하시던 예수님 일행이 예루살렘을 찾은 것은 매우 낯선 일이었을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과 병든 이들을 향해서 말씀을 전하시고, 많은 도움을 주시던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실 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뭔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로마의 식민치하의 조국은 모든 면에서 45열을 겪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혜성처럼 나타난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일깨워주는 감동적인 말씀으로, 그리고 불치병과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민중들을 고쳐주고 희망을 주셨을 때, 그들 민족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신 것은 아닌가 하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 차제에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온갖 추측을 하기에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의 일행은 흡사 왕의 행차를 흉내 내는 것 같습니다. 나귀를 타신 주님과 가실 길에 깔려진 사람들의 옷가지며 나무 가지들, 그리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며 연호하는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의 소꿉놀이 장난 같기도 하고, 순진무구한 일반 시민들의 간절한 기도문구가 있습니다. 바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란 말인데, 호산나는 히브리말로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해 주시옵소서!”(118:25)의 짧은 기도문구입니다. 또 다른 짧은 기도문구로 아람어 마라나타가 있는데(고전 16:22), 뜻은 우리 주님, 오시옵소서.”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기도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는 기도문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호산나를 연호하는 예루살렘 소시민들을 우리 주님께서 어떤 심정으로 만나셨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마음이 이렇게 저려오는데, 주님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십자가를 향한 발걸음이 가볍지 않으셨을까 하고 말입니다. “호산나, 호산나!” 그리고 마라나타, 마라나타!” 지금 우리들이 조용히 소리 내어 기도할 기도문구가 아닐까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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