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871(2020. 3. 9. 월요일).

시편 71:4-6.

찬송 40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위험에 처할 것을 알고 있다.” 세상엔 죽고 나서야 뒤늦은 부와 명예를 누리는 예술가들이 적지 않지만, 그는 30대 후반에 이미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였습니다. 문학적인 성공이 세속적인 부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교사의 1년 수입의 열배 이상을 해마다 인세로 받았습니다. 19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에밀 졸라의 이야기입니다. 1893년 쉰 세 살 때 [루공 마르크 총서] 20권을 모두 완성한 후에, 그 열매만 즐길 일만 남았습니다. 실제로 봄부터 가을 까지는 파리의 교회에 지은 대 저책에서 겨울에는 파리의 아파트에서,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 삶을 유유자적하게 즐기며 지냈지요. 하지만 이런 안락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의 정의로운 분노가 만년의 평화를 산산조각으로 깨트렸기 때문입니다. 에밀 졸라는 진짜 간첩 에스테라지가 무죄로 석방되고,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Alfred Dreufus)가 간첩누명을 쓰고 종신유형을 선고받은데 대해 분노했습니다. 무죄라는 증거가 나왔는데도 군부는 눈을 감았습니다. 1898113일 그는 <로로르지>를 통해 프랑스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냅니다.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을 가진 격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대통령 각하, 저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식으로 재판을 담당한 사법부가 만천하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에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유령이 가득한 밤이 될 겁니다.” 이 글은 프랑스를 드레퓌스 파와 반 드레퓌스 파로 분열시키면서, 엄청난 분쟁을 촉발시켰습니다. 에밀 졸라는 하루아침에 프랑스 문학의 거장에서 조국의 배신자로 추락했고, 가는데 마다 군중의 돌팔매질을 맞았습니다. 대중의 심리를 간파한 프랑스 의회가 에밀 졸라를 기소했고, 18987월 재판부가 징역 1년에 벌금 3천 프랑을 선고했지만, 선고 당일 졸라는 런던으로 망명을 떠났습니다. 1년 후 돌아왔지만, 3년 후인 1902930, 자택에서 가스 중독사로 세상을 떠납니다. 갑작스런 죽음이었고, 타살이라는 의혹이 난무했습니다. 에밀 졸라는 자신이 대다수 국민이 바라지 않는 진실을 밝힐 경우에, 자신에게 어떤 혹독한 일이 닥칠지 예견했을까요? 아마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나는 고발한다>를 쓴 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하니까요. “나는 위험에 처할 것을 알고 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441일 방송>

 

2. “믿음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약속(8-20)”을 읽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행복을 찾아서 일생이라는 힘든 여정을 통과한디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너무도 찰나적인 행복을 추구할 뿐, 길고도 영원한 행복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진수성찬도 그 기쁨이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도 석 달을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재물이나 황금의 환상도 소유하는 순간 서서히 감동이 퇴색해 버립니다. 모두가 단명한 행복들인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찍이 3천 년 전의 사람 다윗은, 하나님께서 죄를 덮어주시고 죄 없다고 인정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32:1-2)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죄로부터 자유한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생에서 만이 아니라 저생에서도 말입니다.

   유다인들은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의로운 백성이 되었다는 증표로 할례를 받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심을 확인하는 표증으로 말입니다. 그러니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롭게 된 사람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동안 우리 기독교회는 일반 종교인들처럼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충실하게 지키는 일, 곧 착한 행실과 공적을 쌓아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인식 말입니다. 인간의 행위가 선행(先行)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하신다는 논리입니다. 그것은 일반종교의 가르침과 동일합니다. 오히려 죄 많은 인간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그들을 죄없다하시고 의로운 사람들의 반열에 세워주신 것입니다. 물론 의롭게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해서 흠과 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삶을 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인을 용서하시고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의 은총을 믿고 있는 한, 그를 정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용서의 품안에 안겨있는 자녀인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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