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희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까?
그는 절망을 온 몸으로 껴 안아본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지금이 희망을 노래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12월 31일 중국에서 들려온 소식은 신종 바이러스가 우한 지역에 들어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 달이 지나기까지 세상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이태리는 비교적 낙관적인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보름이 지나자 세상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국가 권력으로 우한 지방은 봉쇄되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군인들이 적군을 감시하듯 지켰습니다.
그리고 수 백명씩 죽어나간다는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마침내 우한 지방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낼 수 있는 냄비 등을 들고 베란다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시끄럽게 두들기기 시작했습니다. "우한, 힘내라! 우한 힘내라!"
그런데 우리 나라는 그 짧은 시간에 식약처의 허가를 받기까지 불과 3주간만에,
진단 검사 시약을 개발한 것입니다.
그리고 발병자가 생긴 신천지 집단의 수 천명의 사람들을 진단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더기로 감염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신천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일일히 찾아다니며 진단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감염자들이 지나다닌 동선을 추적하기 위해서 휴대폰과 신용카드가 큰 몫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보건 복지부 질병담당부서 책임자들이 TV에 나와서 진단 내용을 보고하였습니다.
감염자 수와 사망자까지 상세하게 보고하였습니다.
하루에도 수 백명씩 감염자들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온 나라가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다 감염이 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대구와 청도 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서울과 경기 그리고 제주도까지 바이러스의 전파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의료 당국자들은 감염원을 찾아내기 위해서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그런 방법 중에는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고 검사하는 Drive Through나
의심스러운 개인이 전화 부스처럼 준비한 곳에 찾아가서 검사를 받는 Walking Through도 생겨난 것입니다.
이런 우리와는 달리 2월 말까지만 해도 미국과 유럽은 며칠 안에 끝날 것처럼 태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바이러스 보균자 이른바 확진자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헤집고 다닌 곳마다
또 다른 확진자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뒤 늦게 사태를 파악한 미국과 유럽은 한국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병원균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오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막지 않는 대한민국.
오히려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은 병원에서 치료를 시키고,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도 격리 시설에 묶도록 조치를 한 것입니다.
환자들이 늘어나게 되자 전국에서 자원한 의사와 간호사들이 팔을 걷어부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음식을 만드는 자원봉사자들,
심지어 격리시설에 묶는 사람들까지 생필품들을 일일히 챙겨주었습니다.
지금 세상은 절망에 빠져있습니다. 2001년 9월 11일의 악몽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최 첨단 기술을 가진 소위 선진국이라고 자만하던 나라들이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총리도 격리생활을 하고 있고, 캐나다 총리와 이태리 총리도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오늘 현재 31만명 이상이 확진자로 병원에서 치료중이고,
벌써 14,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태리에서는 의사도 죽고 하루에 500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다시 한번 문명이란 무엇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지를 묻게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런 문명은 하나도 쓸모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만 피어나는 얄미운 꽃입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 한국을 희망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지도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길인지를 찾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첨단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스크를 만들기 위해 밤을 세우는 사람들,
의료 봉사자들을 위해서 도시락을 만드는 식당 주인들,
간호 장교로 임관하자마자 바이러스가 득실거리는 대구로 내려간 70여명의 간호장교들,
그리고 얼굴에 상처가 생기도록 방호복을 하루 8시간씩 입고 땀을 비오듯 쏟으면서도
화장실에 가는 일이 너무 번거로워(방호복을 벗고 다시 소독 후 다시 입는 일)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다는
의료진들의 얘기가 온 국민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희망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재미없는 천국에 살기 보다는 재미있는 지옥에 살고 싶다고.
절망 그 한복판에서 희망의 싻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변한 세상 속에서
아직도 공동체 속에서 존재하는 개인이라는 건강한 생각을 가진 백성들이 살고 있는 한,
지옥같은 삶을 사는 이웃들을 그냥 보고만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외무부 장관이 BBC와 화상 대화를 가졌습니다.
5, 6분짜리 짧은 영상을 본 영국인들은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저 여자분을 영국의 수상으로 모셔왔으면 좋겠다.
다만 며칠 만이라도 저분을 빌려올 수는 없을까?
소명의식이 확고한 지도자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총리는 절망의 한 복판인 대구로 내려가서 의료진과 행정당국을 진두 지휘했습니다.
느긋하게 며칠 후면 끝날 것이라고 여유를 부리던 미국의 대통령이 몰매를 맞고 있습니다.
100번 맞아도 쌉니다. 그는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캐나다의 한 유투버는 대한민국 참 자랑스럽습니다. 정말 잘 하고 있습니다. 1등 국민입니다.
1등 의료진입니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우리는 선진국 국민임을 자랑해도 좋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가장 못난 사람들이 제 눈에 들어옵니다.
사회적 거리를 정부 지도자들이 그렇게 외치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순교자가 되려는 양
밀집 집회를 강행하는 집단이 딱 한 군데 있습니다. 소수의 개신교들입니다.
세상에 빛은 고사하고 세상에 걱정거리를 안겨다 주는 참 어리석은 무리들입니다.
한 두달 헌금이 없다고 해서 굶어죽습니까? 또 굶으면 어떻습니까?
다른 자영업자들은 부도가 나고 폐업을 하는 판국인데 좀 같이 살면 어떻습니까?
어줍짢게 전쟁중에서 예배를 드렸노라 얘기합니다.
그 속셈을 뻔히 바라보실 하나님 앞에서, 제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없는 사람들은 희망이 무엇인지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대한민국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돕는 평화를 찾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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