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067(2020. 9. 21. 월요일).

시편 시 105:38-40.

찬송 20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얼음공주 종미에게> 동창회 홈페이지가 만들어졌다는 알림장이 왔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누굴 떠올렸는지 아니? 별명이 얼음공주였던 종미, 너였어. 그런데 너는 나를 기억할까? 나 종엽이야. 설마 누구세요? 이러지는 않겠지? 4,학년 5학년 그리고 6학년 내리 3년을 한반 이었는데, 세상이 좋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 홈페이지 한번 접속하는 것만으로 네가 어디서 근무하는지 또 이메일 주소까지 다 알게 되더라. 조금만 더 노력하면 네 휴대전화 까지도 알아낼 수 잇을 것 같았지만, 편지 먼저 보내. 갑자기 전화해서 막 들이댔다가, 어름공주 진면목을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해서 말이야.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넌 쌀쌀 맞은 게 아니라, 어른스러웠던 것 같애. 유치한 장난 난폭한 것, 누군가 힘센 녀석이 남에게 함부로 하는 거, 절대 못 봐 넘겼었지. 그래서 너의 일이 아닌데도 나서서 대신 막아주고 싸워주느라, 우리들 사내 녀석들에게 쌀쌀하게 굴지 않을 수 없었겠지. 그런데 한 가지 네가 오해한 것이 있어. 너 기억나니? 벚나무에 올라가서 꽃가지 하나 꺾어서 내려오던 나를 기다렸다가, 니가 그 때 따졌었지. “나무도 살아 있어. 아무에게도 마음이 있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장난으로 가지를 꺾지 마.” 근데 그거 장난 아니었거든? 선생님 꽃병이 텅 비어 있어서 그냥 한 가지만 꺾어다가 꽂아드릴까 하고 나무에 올라갔던 거야. 물론 니가 하도 서슬 퍼렇게 따져서, 그런 이야기 안하고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지만. 너 이런 시 아니? “기쁨에 넘친 소녀가, 소녀의 이름을 나무에 새겼다네. 가슴을 다친 나무는 꽃 한 송이를 떨어트렸네. 난 마음이 아픈 나무라네. 내게 상처를 준 소녀야, 너의 이름을 영원히 간직할 테니, 가여운 꽃이 어떻게 됐는지 말해다오. 이 시에서 난 마음이 아픈 나무라네. 이 대목 읽으면 늘 네게 왜 꽃은 꺾느냐고 당차게 따지던 네 생각이 나곤했어? 넌 아직 나무에도 마음이 있다고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니? 참 궁금하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526일 방송> a.

 

2. “나는 세상의 빛이다(12-20)”나는 그리스도 이다(21-30)”을 읽었습니다. 두 단락 모두 전형적인 계시복음입니다. 오늘은 첫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해서 온 나라 그리고 온 세상이 홍역을 치르는 중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소위 슈퍼 전파자로 교회가 문제 집단으로 눈총을 받는 중입니다. 세상을 밝힐 빛이 되어야 하고, 맛을 내는 소금의 역할을 짊어져야 할 교회가 오히려 정반대의 모습으로 비춰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예배는 멈춘 적이 없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교회의 존재의의를 찾을 수 없다는 거창한 말도 꺼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런 말들 속에는 세상을 위해서 라는 말은 한 마디도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3거리에는 세 분의 프랑스 신부님과 두 분의 조선인 신자의 순교를 기념하는 큰 바위와 오각형 비석이 있는데, 이를 오성바위라고 부릅니다. 순교자들이 속출하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조선의 신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어둠속에 살고 있는 조선 땅의 백성들을 위해서, 한 줄기 큰 빛으로 우리 땅을 찾은 것입니다. 1866330일이었습니다. 교회는 캄캄한 세상을 밝히기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작금의 우리 교회 지도자들의 속 좁은 모습을 보면서, 이런 모습이 과연 교회에 도움이 되는 일일까? 해악을 끼치는 일은 아닐까?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온 세상이 깊은 시련 속에 살고 있을 때가 제대로 된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교회가 앞에 나서서 고통과 슬픔을 겪는 세상을 껴안아주는 일을 한다면, 세상은 교회를 새롭게 바라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아주 작은 것을 붙잡기 위해서 예배를 가장한 추태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전도사님을 위해서 성미를 모았던 초대 교회를 각오한다면, 우리 교회는 세상을 밝게 비출 수 있는 거룩한 교회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성공과 출세만을 가르쳐왔으니 힘든 결단이겠지만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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